땅은, 그리고 흙은 그 역사성만으로 충분히 신성하다. 그 범주는 하늘과 물과 나란히 놓여 광막한 자연을 이루며, 5,000년 한민족 수리농경의 질긴 신화를 잇게 했다. 해서, 땅은 '천지인(天地人)' 민족미학의 중심에 버티고 섰던 것일 게다. 물론 세상은 변해 농자(農者)가 천하의 본(本)에서 밀려난 지 오래. 다산(多産)의 옥토가 천대 받는 일도 허다해졌고, 자갈 박토가 일약 금싸라기로 떠받들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부박(浮薄)한 세태의 셈일 뿐, 그 내재적 가치와는 무관할 터. 부동산으로서의 땅과 흙의 땅은 다르다. 충북 보은군이 제 땅을, 엄밀히 말하면 싯누런 황토 흙을 팔아먹겠다고 나섰다. 논 갈고 밭 매던 조상의 땀과 살과 뼈의 부토를 상품화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땅의 물성적·생래적 가치에 대한 천착이고, 땅에 대한 전통미학의 복원이라는데…. 그 사정이야 딱하달 수도 있지만, 이랬거나 저랬거나 '황토 보은'의 기치는 이미 장하게 올랐다.보은군의 '흙 장사' 구상이 무르익기 시작한 것은 1999년 말이다. 10%선 유지도 버거운 군 재정자립도에, 13만 명을 웃돌던 군세도 4만 명으로 졸아든 마당이었다. 속리산이 있다지만 국립공원관리공단과 절 집만 배 불리는 '빛 좋은 개살구'일 뿐. 되레 군 면적의 12.8%가 자연공원법에 묶여 개발 소외의 멍에만 뒤집어 쓴 격이라고 했다.
그 뿐인가. 대청호가 생긴 뒤로 11개 읍면 가운데 회남·회북면(전체 면적의 17.2%)이 상수원보호구역이다. 북으로는 도청소재지 청주가, 남으로는 대전이, 동으로는 경북 상주 등 대도시가 1시간 거리에 둘러섰다. "말이 좋아 관광·농업군이지, 실속은 딴 동네서 다 챙겨가는 규."
때는 국제통화기금(IMF) 한파가 매섭던 때였고, 어디나 공공근로 하겠다며 장정들이 줄을 서던 시절이었다. 그 일손으로 구병산(외속리면 서원리)에서 속리산 문장대를 거쳐 묘봉(산외면 산정리)으로 이어지는 등산로를 닦았다고 한다. 그리고 거기다 '충북 알프스'라는 이름을 달았다. "속리산이야 수학여행때 죄다 한번씩 댕겨오지만 두 번 다시 안오잖유. 그래서 등산로를 새 단장 한 김에 간판이라도 바꿔 달아보자는 취지였지유."
군 살림을 맡아보던 당시 군청 재무과의 고민은 개발규제의 역(逆) 발상이었다고 한다. 속리산 물이 삼강(한강 금강 낙동강)의 원류다. 윗물이 맑은 것은 자연의 이치이고, 물이 맑으니 자연이 깨끗한 것도 자명한 사실.
당시 재무과장을 맡았던 황종학(52) 보은군 종합민원실장의 말. "자연을 팔아먹자고 보니까 공기하고 흙밖에 없습디다. 그런데 공기는 인근 제천군이 박달재 무공해 산소로, 제주도가 한라산 공기로 이미 손을 대버린 규." 군은 보은 땅(흙)에 대한 문헌 및 실지조사에 착수, 과거부터 도요지가 번성했다는 것과 오색(황 적 흑 백 청)토가 군 전역에 고루 분포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특히 한국 건자재시험연구원과 한국지질자원연구원에 실험을 의뢰한 결과 보은의 청정 황토가 타 지역 황토에 비해 순도가 높고, 점성이 뛰어나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보은군 민관은 공무원황토연구회며, 민관협의체 등을 구성해 문헌 연구와 사업화 아이디어 등을 개발했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가며 삼국사기와 향약집성방, 동의보감, 산림경제, 본초강목, 산해경, 왕실양명술 등 옛 저술들의 황토관련 기록과 민간의 구전요법 등을 찾고 정리했다. 그들은 몸에 황토를 개어 바른 뒤 '충북 알프스'를 등반하고, 피로도를 체크해 체험보고서를 만드는 등 차마 웃지 못할 노고와 열정으로 '황토 보은'의 깃발을 준비했다고 한다.
보은 사람이라면 황토 좋은 것이야 과학의 힘을 빌기 전부터도 익히 체득한 터다. "모심기 함서 황토 땅에 발 비비고 나믄 무좀이며 고름 든 상처도 다 없어지잖유." "황토를 환(丸)지어 보리밥에 섞어먹고 속병을 다스렸다는 말도 있슈." 굳이 보은이 아니더라도 그렇다. 큰 물 든 뒤 싯누런 황토 냇물에 들어 한 나절 천렵을 했더니 오금 살 부스럼이 씻은듯이 낫더라는 식의 기억 한 두가지야 '좋은 약'이 나오기 전 세상을 산 이라면 누구나, 다소 과장되게 한 자락씩 풀어놓는 경험담이다.
"영화 '베어' 안봤소? 총 맞은 곰도 황톳물에 제 살을 씻고 소독하잖유." 황토로 벽돌 지어 흙장집에 살고, 황토 아궁이에 쪼그려 앉아 낮밤을 장작불 지피며 산 덕에 자궁암이며 유방암이 없었다던 긴가민가하던 설도, 이제는 황토의 원적외선 복사이론과 항균 탈취 정화 등 입증된 효능을 통해 산 과학의 실증사례로 거론되는 세상인 것이다.
군은 민간 업자들과 머리를 맞대고 황토볼(구슬)을 개발, 2000년 속리산 황톳길(448m)을 열었다. 그게 히트였다고 한다. 지난 여름 속리산에서 전지훈련을 하고 황톳길에서 피로를 푼 코오롱 마라톤선수단이 세계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낸 뒤 최근에는 국가대표 상비군이 캠프를 차리기도 했단다. 황토볼은 전북 무안을 비롯, 서울 등 전국 대다수 지자체가 사들여 황톳길을 조성하는 등 지금도 꽤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그 사이 소리소문 없이 비누며 팩이며 타일 콩나물시루 지압판 베개 벽돌 모르타르 매트 등이 개발돼 '황토 보은'의 이름으로 시판되고 있고, 황토옷걸이 황토양말 등 상당수도 제품화단계라고 한다. 그간 군이 따냈거나 출원중인 황토관련 특허 등 지적재산권만도 10여 건에 이르고, 군의 경영수익사업 지정업체들은 매출의 2%를 특허 로열티로 군에 내고 있다.
황토타일업체인 태명토탈(주)는 문 연 지 한 달 만에 국내 굴지의 아파트 건설업체와 납품계약 성사단계에 와있다고 했고, 황토비누며 팩 등을 만드는 유디아미네랄은 이 불경기에도 적자 없이 연 2억∼3억원의 매출을 유지하고 있다고 했다.
황토 정기를 빨아먹고 맺은 보은의 농산물도 사과며 배, 고구마를 막론하고 모두 '황토' 브랜드를 달고 대접 받으며 나간다고 군 관계자는 뿌듯해 했다.
보은 토박이 유디아미네랄 유재섭(52) 사장은 황토 효능과 활용에 관한 한 '박사'로 통한다. 그는 기술력을 심화해 사업의 대를 물릴 참이라고 했다. "황토의 신비야 끝이 없고, 건강에 대한 관심 역시 커질 거 아뉴." 해서 황토산업의 성장잠재력도 무궁무진하다는 게 그의 신념이다. 어디 그만의 생각일까.
막막한 터에 실낱 같은 희망을 보면, 느긋한 충청도 산골 민심도 이처럼 집요하고 악착스러워지는 모양이다. "황토 원적외선이 피로도 씻어내고 세포도 젊게 해준다잖유. 묻혀있던 황토를 파내기 시작했응게 이제 두고 봐유." 조상의 음덕으로 시작된 '황토 보은'의 신화다. 그 신화는 이제 시작이라고 했다.
/보은=글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사진 배우한기자
"황톳길·황토펜션… 황토특구로 오세요"
군은 지난 해 행정자치부 특별교부세(12억원)와 도·군비 등 16억원을 투입, 삼승면 송죽리 5,000여 평에 황토타일과 황토관(棺) 생산단지를 조성중이다. 내속리면 구병리 일대를 황토마을로 꾸며 황톳길과 황토찜질방, 목욕탕, 황토민박집 등을 가꾸고, 충북대 청주과학대 등과 함께 황토의 효능연구와 임상실험을 본격적으로 벌일 참이다. 오는 3월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주관으로 열리는 제1회대한민국 지방자치단체 박람회를 기점으로 보은 황토제품에 대한 대대적인 홍보도 기획하고 있다.
이와 함께 올해 정부가 추진하는 지역발전특구사업에 '황토레저관광특구' 계획을 신청, 황토 펜션관광·레저단지를 조성한다는 복안도 세워뒀다고 한다. 그간 대도시에 치여 홀대 받아온 '관광 농업군'의 위상도 180도 달라질 것이라는 게 군민들의 믿음이다.
보은군은 가장 원초적인 지점에서, 가장 근원적인 방식으로 상생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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