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보장기본법에 따라 5년마다 제시되는 두 번째 사회보장장기발전계획으로 '참여복지5개년계획'이 발표되었다. 이번 계획은 보건복지부 등 6개 정부부처와 민간위원들이 '참여복지기획단'을 구성하여 1년여 간 심혈을 기울인 결과이다. 보고서는 600쪽이 넘는 분량에, 중점추진과제만 해도 59개에 이르는 방대한 기획안이다.참여정부의 복지 청사진이라 할 이번 계획의 정책목표는 전 국민에 대한 복지서비스의 제공과 상대빈곤의 완화, 풍요로운 삶의 질이 구현되는 참여복지공동체의 구축에 있다. 이를 위해 사회보장제도 내실화, 복지인프라 구축, 복지서비스 확대라는 정책 영역별 추진과제들을 설정해 놓고 있다.
이번 계획은 방대하고 화려하지만 몇 가지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특히 저출산·고령화, 노동시장의 급격한 변화와 고용 없는 성장 등 우리 사회가 직면한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복지가 더 이상 낭비가 아니라 미래의 성장과 사회통합을 촉진하기 위한 투자라는 사실을 감안할 때, 여러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 계획의 구현의지와 가능성을 짐작할 수 있는 구체적인 재정계획이 빠져있다. 기획단의 최종보고서에는 2008년 사회복지지출을 국민총생산의 13% 수준으로 늘린다고 나와 있을 뿐, 5년간 지출이 얼마인지 전체 계획의 비용에 대한 언급이 없다. 만약 부처간 협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라면, 이는 정부 부처사이에서조차 정책혼선이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기에 더 큰 우려를 낳는다.
둘째, 특별히 '참여복지'라고 부를만한 특징적인 제도나 굵직한 정책이 보이지 않는다. 이번 계획은 오히려 이전부터 추진해오던 각 부처·부서별 사업을 재포장하고 재배치한 '짜깁기' 식 청사진에 가까워 보인다. 특히 기초보장의 사각지대 해소, 보육시설의 확충, 사회보험의 내실화, 노인과 장애 아동에 대한 사회복지서비스 확충 등은 이전 정부 때부터 지속적으로 실행해오던 사업이기에, 참여복지의 이념이나 철학을 반영하는 새로운 정책과제라고 보기 어렵다. 문화기본권 신장, 주거복지의 확충, 정보격차의 해소 등 새로운 과제를 복지의 틀 안에 흡수한 것은 긍정적이지만, 이것이 과연 진정한 사회복지 저변확대의 계기가 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셋째, 노동시장의 변화에 민감한 사회보장장치에 대해 고민한 흔적을 읽을 수 없다. 급변하는 노동시장의 구조와 인구·가족구조의 변화를 고려할 때 사회보장제도의 내실화는 그 어느 때보다도 시급하다. 비정규직과 저소득 근로계층에 대한 사회보장은 기존의 틀로 해결하기 어렵기 때문에, 복지선진국이라 할 수 있는 유럽의 경우 "유연보장"(flexicurity)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 참여정부 역시 경제와 복지의 선순환을 전체 계획의 추진원리로 삼는다면, 급속히 변화하는 노동환경과 조건에 적합한 사회보장제도의 구현에 대해 고심해야 한다.
넷째, 복지인프라의 공공성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이 미흡하다. 복지서비스나 급여가 효율적으로 전달·관리되기 위해서는 우선 수혜자 중심의 복지 인프라가 구축되어야 한다. 따라서 공공 인프라에 대한 초기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특히 보육, 장애인, 가족, 노인요양 등의 서비스 영역에서, 시설이나 인력의 공공성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확보하지 못할 경우 비용 상승요인을 통제할 수 없을 뿐더러 예산집행의 효율성도 기대하기 어렵다.
1980년대 초반부터 우리나라는 지속적으로 선진복지제도를 도입하는 동시에 복지지출을 늘려왔다. 지금도 매년 복지의 파이는 커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참여복지'가 단순한 양적 팽창을 넘어서는 진정한 의미의 복지품질 제고전략이 되기 위해서는 '참여복지공동체'라는 화려한 슬로건에 어울리는 보편적 복지시민권을 담보할 수 있는 정책이 제시되어야 할 것이다.
엄 규 숙 경희사이버대 교수·비교사회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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