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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가 경로잔치 "훈훈한 설" "고향생각 간절하지만 부모님 뵙는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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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가 경로잔치 "훈훈한 설" "고향생각 간절하지만 부모님 뵙는듯"

입력
2004.01.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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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이 떡국 드시고 오래오래 사세요." "북한에서 온 처녀가 고생이 많네. 맛나게 잘 먹을게."설을 이틀 앞둔 20일 경기 과천시 노인복지관. 점심을 먹기 위해 복지관을 찾은 300여명의 과천지역 노인들은 낯선 여성들의 식사대접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하얀 앞치마를 두르고 식판에 떡만두국과 귤을 얹어 차례차례 식탁으로 가져다 주는 봉사자들은 바로 탈북자들이었다.

이날 행사는 지난해 10월 입국한 탈북자 30여명이 설을 맞아 불우한 노인들에게 봉사를 하자는 취지에서 마련한 '한민족 설날 경로 대잔치'. 탈북자들은 남북사회복지 실천운동본부, 과천 노인복지관의 지원을 받아 음식을 준비했고, 이날 직접 접대와 설거지를 맡았다.

처음에는 어색한 듯 굳은 표정으로 음식을 나르던 탈북 여성들은 시간이 흐르자 입가에 환한 미소를 머금기 시작했다. "할아버지 다 드신 그릇 저 주세요. 제가 치울게요." "고맙네. 힘들지 않아?" "일없습네다. 아니, 괜찮습네다." 아직은 어색한 서울 말씨를 쓰고 있었지만 마음 씀씀이만은 우리네 착한 이웃의 그것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황해도 해주 출신인 이모(29·여)씨는 "명절이 되니 고향에 두고 온 어머니 생각 때문에 우울했는데 이렇게 많은 어르신을 모시다 보니 마치 집에서 잔치를 치르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며 환하게 웃었다. 50여년 전 한국전쟁 때 남편이 실종됐다는 김모(75) 할머니는 이씨의 손을 부여잡고 "북에서 온 사람들이 이렇게 우리를 대접해주니 너무 고맙고 반갑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식사 대접을 마친 탈북자들은 노인들을 위해 특별 공연까지 펼쳤다. 지난 3개월 동안 짬짬이 갈고 닦은 실력으로 '반갑습니다', '백두에서 한라까지' 같은 북한 노래를 부르자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박수로 화답했다.

탈북자 김모(39·여)씨는 "우리도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남북사회복지 실천운동본부 구영서 목사는 "탈북자들이 이런 행사를 통해 주인의식과 자립심도 갖게 되고 봉사정신까지 되새기게 됐다는 점이 큰 소득"이라고 말했다.

/과천=정상원기자 orno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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