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쌀 재협상' 개시를 공식 선언했다. 이는 1994년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 때 얻어냈던 쌀 관세화 유예 기간이 올해 말로 종료되기 때문이다. 당시 김영삼 정부는 쌀 의무 수입량(MMA)을 국내 평균 소비량의 4%까지 늘리는 것을 조건으로 관세화를 유예 받았는데, 2005년 이후 쌀시장 개방 여부는 2004년 중 재협상해 결정키로 했다.쌀 재협상의 최대 쟁점은 관세화로의 전환 여부다. 관세화를 조건으로 쌀 수입을 전면 허용할 것인지, 아니면 수입은 계속 막되, 의무수입물량을 크게 늘일 것인지 선택이다. 정부는 '관세화 유예가 공식입장'이라고 밝히고 있으나, 협상 과정에서 우리 정부가 실제로 이 원칙을 관철시킬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예외 없는 관세화가 원칙인 국제사회에서 예외를 인정 받기 위해서는 그만큼 경제적 실리를 양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146개 세계무역기구(WTO) 회원국 중 일시적이나마 식량안보 등을 이유로 관세화 유예 적용을 받았던 5개국 중 일본, 대만, 이스라엘 등은 이미 관세화 전환을 마쳤고 우리와 필리핀만 남아있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우리 주요 협상 상대인 미국, 중국, 호주, 태국 등이 관세화 유예에 동의할 경우 그 반대 급부로 쌀 의무 수입물량을 현재보다 2∼3배 가량 늘려달라는 요구를 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올해 우리 정부가 국내 소비량의 4%인 20만5,000톤의 쌀을 의무적으로 수입해야 하는 것을 감안하면, 관세화가 유예됐을 경우 2005년부터 정부가 의무적으로 구입해야 하는 외국 쌀은 연간 50만∼60만톤에 달하게 된다. 쌀의 국제 가격이 톤당 220달러 내외이므로, 관세화 유예의 경제적 부담이 연간 1억∼1억3,000만달러에 달하는 셈이다.
이에 따라 재정경제부 등에서는 '차라리 관세화를 택하자'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쌀 관세화 유예를 통해 외국산 쌀의 수입을 차단하는 전략은 실효성이 없으며, 관세화 전환을 선언하고 높은 관세를 보장 받으면 오히려 피해를 줄일 수 있다는 논리이다.
재경부 관계자는 "94년에는 정치권과 관료들이 농민들을 의식해 오히려 피해를 키우는 잘못된 결정을 내렸으나, 이번에는 제대로 된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협상 전문가들은 미국, 중국, 호주, 태국 등 쌀 재협상의 주요 상대국가 중 중국과의 협상이 가장 중요하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한 관계자는 "미국과는 쇠고기 수입재개 등 농산물 분야에서 주고 받을 현안이 있기 때문에 협상이 예상외로 순조로울 수 있으나, 한국에 대해 만성적 무역역조를 보고 있는 중국은 사정이 다르다"고 말했다.
/조철환기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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