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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窓]지놈? 게놈? 개놈?

입력
2004.01.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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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의 '개혁 강박증'은 정말 중증이라는 생각이 든다. 온통 '바꿔 중독'에 걸려 정신을 소모하고 자원을 낭비한다.생물의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염색체를 일컫는 용어는 Genom(독어), genome(불어), genom(e)(영어), ?낾?(게노무, 일어) 등으로 나라마다 달리 표기한다. 우리말사전에는 '게놈'이다. 그런데 최근 새삼스럽게 '지넘'이니 '지놈'이니 하면서 아옹다옹한다. 이런 상황을 보다 못한 누군가가 내 뱉었다.

"제놈이 개놈이래!"

지난 연말에는 교육부가 그 동안 잘 사용되던 기초 화학용어 표기법을 개정해, 이르면 2005년부터 초중고 교과서에 적용할 방침이다. 국제 순수 및 응용화학 연합(IUPAC)의 국제 기준에 맞지 않으므로, 이를테면 크롬을 크로뮴, 메탄을 메테인, 게르마늄은 저마늄으로 바꾼다는 게다.

크롬의 경우에도 Chrom(독어), chrome(불어), ?냡?(쿠로무, 일어) 등으로 나라마다 표기가 다르다. 도대체 무엇이 국제 기준이란 걸까. 크롬을 크로뮴으로 바꾼다고 해서 무엇이 달라지나. 그야말로 숭미주의인가. 교과서와 참고서를 비롯해 관련 서적을 수정하느라 또 한바탕 난리를 치르면서 귀중한 정신과 자원을 낭비해야 할 판이다.

우리 사회의 '바꿔 중독'은 역사가 오래다. 최한기(1803∼1877)는 만유인력을 소개하면서 Newton을 奈端(나단)으로 표기했다. 이를 뉴톤으로 바꾼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뉴톤이 다시 뉴우톤, 뉴우튼, 뉴튼, 뉴우턴, 뉴턴 등으로 계속 바뀌었다. 우리말 사전마다 표기가 다른 지경이다.

영은문을 헐고 그 자리에 세운 독립문의 표기는 처음에 Dogribmun이었던가. '개갈비문'이 뭐냐는 농담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그 뒤 Tongnimmun, Dongnipmun, Doglibmun, Dongnimmun 등으로 계속 바뀌었다. 그때마다 도로 표지판이나 지도 등을 바꾸느라고 많은 자원을 낭비했다. 하지만 표기를 바꾼 덕분에 독립문에 달라진 게 있나?

우리 사회가 이처럼 덧없는 낭비와 소모의 세월을 되풀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전문가들은 물론 어문학자들까지도 '외국어'와 '외래어'의 변별력을 상실한 때문이다. Apartment는 외국어이고 아파트는 외래어인 것처럼 Chrom, chrome, chromium은 외국어이고 크롬은 외래어다. 외국어와 외래어를 혼동하는 한 소모적이고 낭비적인 '바꿔 중독'은 치유되기 어려울 게다.

조 영 일 연세대 화학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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