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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와 현장]입사시험 漢字과목 신설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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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와 현장]입사시험 漢字과목 신설 논란

입력
2004.01.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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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경제인연합회와 한국무역협회 등 경제 5단체가 최근 올해 각 단체 신입직원 채용시험에 한자과목을 넣기로 결정했다. 이 단체들은 또 소속 회원사들인 일반 기업에게도 신입사원 채용 때 한자구사능력을 반영토록 적극 권장키로 하고, 한자병기 명함 사용 캠페인도 전개하기로 했다. 재계의 이 같은 결정을 두고 업계와 학계는 물론 당사자 격인 취업준비생들 사이에서도 찬반 양론이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전경련 "국제교류 위해 필수"

전경련 등 경제단체는 한자실력 저하가 중국 일본 등 한자문화권 국가와의 비즈니스에 걸림돌이 된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동북아의 경제교류가 증가하는 시점에서 한자의 중요성이 더욱 높아지는데도 교육현장의 한자 비중은 오히려 낮아지고 있어 중국과 일본 거래처와의 명함교환을 비롯한 간단한 수인사마저 이뤄지지 못하는 등 인맥구축 및 정보수집에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지적이다.

전경련 관계자는 "제발 대학에서 기업들이 필요로 하는 과목들을 가르쳐 달라"고 주문한 뒤 "한자나 제2외국어 등의 기초교육은 이미 입사 전에 받았어야 하는데 현행 대학교과과정의 문제점 때문에 기업에서 뒤늦게 교육시키는 모순이 거듭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한자관련 단체들은 쌍수를 들어 환영하고 있다. 단국대 남풍현 명예교수는 "한자를 제대로 배워야 국어를 잘할 수 있다"며 "한자교육이 대학입시에서 선택으로 돼있고 공교육에서도 기본적으로 한자를 교육할 환경이 만들어져 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한자를 제대로 알고 써야 우리 말과 글도 발전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한글단체 "불필요한 이중부담"

한글학회나 관련 시민단체들은 불필요한 이중부담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이들은 중국식 한자는 간자체를 선호해 우리의 정자체와 상당 부분 다를 뿐 아니라 국제교류를 위해서는 차라리 중국어 회화 가능자를 충원하는 것이 낫다는 주장을 편다. 또 입사시험에 포함할 경우 사교육비 증가 등 사회적 비용 추가가 우려된다고 지적한다. '우리말 살리는 겨레모임'의 이대로 대표는 "한자가 주된 언어인 일본에서 공교육용으로 1,945자를 가르치는데 우리 공교육도 이와 비슷한 1,800자를 가르치고 있어 그 정도면 충분한 수준"이라고 강조했다. 이미 한자시험을 치르고 입사한 직원들의 반응도 대체로 '불필요' 쪽에 모아져 있다.

이렇듯 각계 의견이 분분하지만 당사자 격인 취업준비생들은 벌써부터 한자공부에 열을 올리고 있다. 서울 교보문고에 따르면 한자관련 서적의 판매량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0% 정도 늘었다고 한다. 또 서적구입 계층도 예년의 초·중·고교생이 아닌 취업준비생들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고려대 졸업반인 김모(23·여)씨는 "중·고교때 한자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했는데 뒤늦게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하니 막막한 심정"이라고 말했다.

분명 한자는 우리 말과 글에 70% 가량 녹아있다. 한자를 토대로 뜻을 이해해야 우리 말과 글을 보다 쉽고 발전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입시와 취업준비에 시달리는 학생들에게 일정 수준 이상의 한자공부를 갑작스레 강요하는 것도 무리한 측면이 있다. 중간입장의 전문가들은 "방치되는 공교육상의 한자교육이 보다 내실있게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먼저 강구해야 한다"는 해법을 내놓고 있다.

/염영남기자 liberty@hk.co.kr

최영윤기자 daln6p@hk.co.kr

찬성/박 원 홍 한자교육추진 총연합회공동대표

한나라당 박원홍 의원은 한자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바로 "우리세대뿐 아니라 다음 세대를 위해서 한자교육은 강화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한자는 중국 글이 아닌 우리 글이란 주장을 펴면서 국어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라도 한자교육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 의원은 "한자 없이 한글만 쓰다가는 동음이의어 등의 혼동을 가져올 수 있다"며 "한글만 쓰는 것을 애국이라고 착각하고 있는데 이대로 한자를 도외시하다가는 국어사용에 큰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일제강점기 때 독립운동의 일환으로 학자들이 한글운동을 지속해왔는데 이것이 해방 이후에도 이어져 마치 한글만 쓰는 것이 국어사랑인양 오도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영어가 영국과 미국 것이 아닌 서양문화를 대변하는 글자이듯이 한자도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 등을 아우르는 동양문화의 소산"이라며 "한자문화권 15억 인구를 겨냥한 허브(Hub) 역할을 해내려면 한자교육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박 의원은 한발 더 나아가 입사시험에서만 한자과목을 추가할 것이 아니라 공교육 내실화를 위해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도 한자를 선택이 아닌 필수과목으로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 실시중인 기업들

"실시해보니까 좋던데요."

이미 한자과목을 입사시험에 포함하고 있는 일선 기업들은 한결같이 업무 효율성 면에서 상당한 성과가 있다는 반응이다. 중국 일본 등 한자문화권 국가와의 교역관계를 떠나서라도 내부 업무를 위해 한자는 어느 정도 익히고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SK그룹은 1996년부터 신입사원 선발과정에서 치러지는 인성·적성검사에 한자시험 성적을 반영하고 있다. 시험은 20문항 정도에 사지선다형으로 출제되고 있으며 한자의 뜻과 음을 묻거나 기본적인 사자성어의 괄호넣기 등이 주요한 내용이다. SK 관계자는 "일상적인 문서상 업무에도 한자가 많이 사용되므로 전체 직원들이 기본적인 수준의 한자는 알고 있어야 업무진행에 유리한 측면이 있다"며 "더구나 한자문화권인 한·중·일 동북아 3개국간에 무역 교류가 늘어나고 있어 한자의 중요성은 점점 커지는 추세"라고 말했다.

SK는 입사시험과는 별도로 생활한자를 담은 책자를 신입사원과 젊은 사원에게 보급해 교육에 활용하고 있다. SK이외에 금호·아시아나 등에서도 입사시험 및 내부인사 시험에 한자과목을 포함시키고 있다.

반대/이 현 복 한글학회 부회장 서울대 명예교수

"한자로 인재를 선별한다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입니다."

한글학자 이현복(68) 서울대 명예교수는 중국과 일본이 한국 기업에게 큰 시장이므로 한자를 많이 알수록 업무수행에 도움이 된다는 재계의 주장에 반대했다. 이 교수는 "동북아에서도 한·중·일이 쓰는 한자는 각각 다르므로 통하지도 않을 문자를 애써 익힐 필요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한자를 많이 안다고 음성 언어인 중국어와 일본어를 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알파벳을 다 외운다고 영어를 잘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라고 부연 설명했다.

그는 또 한자를 기업 채용과정의 과목으로 선정할 경우 취업 준비생들이 입사를 위해 한자 학원을 다녀야 하는 등의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이 증가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했다.

이 교수는 "무역에서 중국어와 일본어에 능통한 사람이 필요하다면 입사지원자 전체를 대상으로 한자시험을 볼 것이 아니라 별도의 전형으로 중국어와 일본어 어학능력을 검증해 뽑거나 아니면 사원 중에 어학전문가를 따로 육성하면 될 것"이라며 "컴퓨터와 가장 궁합이 안 맞는 후진적 문자 중 하나인 한자를 보급하기보다는 오히려 한글의 세계화를 위해 각계에서 힘을 모아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 한자시험 본 사원들

"별로 필요없던데요."

실제 한자시험을 거쳐 대기업에 합류한 사원들은 원활한 업무추진과 한자실력과는 그다지 상관관계가 없다는 반응이었다. A그룹은 신입사원 채용부터 한자시험을 보고 승진심사시에도 한자시험을 따로 실시해 그 성적을 반영한다. 하지만 소속 직원들은 대부분 불필요한 이중부담이라며 고개를 가로 젓고 있다.

이 회사 사원 김모(31)씨는 "한자시험이 승진에 반영이 된다고 하니 억지로 공부할 뿐"이라며 "일반적으로 한자를 많이 알면 업무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중국이나 일본을 직접 상대하는 분야가 아니면 큰 쓸모는 없는 편"이라고 말했다. 입사시험인 인성·적성시험에 한자 시험을 포함시키고 있는 B그룹의 직원들도 반응은 비슷했다. 마케팅 관련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박모(28)씨는 "현재 업무상 한자능력보다는 영어능력이 훨씬 더 중요한 것 같다"고 밝힌 뒤 "입사할 때 본 한자시험문제도 그리 어렵지 않아 굳이 이런 수준의 테스트를 치를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고 말했다. 소수의 해당 업무자만 갖춰야 하는 능력을 굳이 전 사원에게 강요할 필요가 없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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