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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다시본다]1부 (2)신세계질서 속 외교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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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다시본다]1부 (2)신세계질서 속 외교 전략

입력
2004.01.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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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일극주의적 신국제질서 속에서 일본은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질서를 받아들이면서 국가의 안전보장과 경제적 번영을 계속하는 것이 국익이라는 외교전략 노선을 추구하고 있다.일본의 외교전략은 1945년 이래 기본적으로 현실주의적이었다. 변화하는 국제정세의 기본 구도를 실용적으로 활용하여 일본의 국제적 지위를 확보하기 위해서 전략적으로 국가 자원을 투입했다.

냉전기에는 공산주의에 대항하는 자유주의 진영의 일원이 돼 경제적 자원을 밑천으로 하는 외교를 수행했다. 제국주의 침략국가였던 일본은 냉전이라는 국제정세의 소용돌이 속에서 어느덧 서방 진영의 중심적인 일원이 됐다. 공산주의 붕괴 후 유일 강대국인 미국 중심의 국제질서를 방어하고 유지하는 데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있다. 예를 들어 1996년의 미일동맹의 재정의(再定義) 이래로 동맹강화를 목적으로 하는 일본의 군사적 역할 확대가 국내 정치과정에서 큰 반대없이 진행되고 있다.

9·11 사태 이후 테러와의 전쟁에서도 미국에 동조하여 경제적 자원뿐만 아니라, 정치적 및 군사적 협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일본 국내의 헌법이나 여론 등 제약이 있으나 최대한 미국의 요구사항을 만족시키려고 하고 있다. 국제연합의 결의가 없더라도 미일동맹의 당사국 의무를 다하기 위해서 일본 자위대가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지역인 이라크에 파견됐다.

미일동맹을 유지시키는 정치적 명분은 자유와 민주주의 가치관에 대한 공유이다.

아시아 국가들은 여전히 일본의 군사적 확대노선을 우려하고 있으나 그 비판의 소리는 점점 약화하고 있다. 20세기 전반기 일본의 군사적 확대노선은 영미세력이 주도하는 세계질서에 도전하기 위한 것이었으나, 오늘날의 그것은 영미가 주도하는 국제질서를 방어하기 위한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자유와 민주주의 가치의 경제적 표현은 무역과 금융 등 국가간 자유로운 경제활동이다. 일본의 전후 경제성장은 무엇보다도 자유무역 질서의 혜택을 받은 것으로, 일본과 같이 자원이 빈약한 국가로서는 자유무역체제가 유지되는 것이 국익이다.

일본의 경제외교 전략은 IMF와 WTO로 상징되는 세계경제 질서를 유지하는 데 협력하는 것으로, 이 질서는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질서의 일부분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미일동맹은 경제적 의미까지 내포하게 된다. 즉, 자유무역 질서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지역의 평화와 안전이 불가결하며, 미일동맹 속의 일본은 일본의 안전뿐만 아니라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평화와 안전보장을 위해서 미국 군사력의 발진기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일본 외교에서 미일동맹 다음의 우선순위는 아시아, 특히 주변국가와의 우호관계의 강화이다. 냉전시기에는 공산주의라는 공통의 위협과 반공이라는 공통의 이익이 있었다. 냉전 종결 후에는 그런 공통의 위협의식이 없어졌기 때문에, 과거역사 문제가 주변국가와의 관계 수립에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됐다.

그런 의미에서 과거청산의 기조 위에서 미래지향적 관계의 수립을 약속했던 1998년 김대중 대통령의 방일은 일본 외교의 커다란 성공이었다. 일본의 외교 통상 당국은 미래지향적 관계의 상징으로 한일 자유무역협정(FTA)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미국이 악의 축으로 규정한 북한과 관계는 북미간 관계개선 없이는 일본으로서는 관계 진전을 추진하지 않을 것이다.

중국에 대해서는 정치 군사대국으로서 경제력까지 갖게 되면 일본 국익에 잠재적 위협이 될 것으로 보고, 중국의 리더십을 억지, 견제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 있다. 이러한 중국관이 일본 외교에서 나타나고 있는 현장은 동남아시아 지역에 있어서 경제적 리더십 경쟁이다.

중국이 2001년 11월 중국―ASEAN 정상회담에서 10년 이내에 FTA를 체결하도록 합의하자 일본은 경악했다. 중국―ASEAN의 FTA가 일본―ASEAN의 FTA보다 먼저 체결된다면 중국의 경제적 리더십의 그늘에 일본이 들어가게 될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2003년12월에 일본―ASEAN 특별정상회담을 동경에서 개최하고, 올해 1월에 필리핀, 타이, 말레이시아와 FTA 교섭을 개시한 것도 동남아시아에서 경제적 리더십을 잃지 않으려는 의도라고 볼 수 있다.

일본이 동아시아 지역에서 FTA 형성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농산품 수입자유화에 의해서 발생하는 구조조정의 고통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된다. 고통 극복을 위해서는 일본 국내의 정치적 타협이 선행되어야 하며, 이런 의미에서 일본의 동아시아지역 경제적 리더십 발휘에 관한 국민적 합의 형성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장래의 일본외교 전략은 현존하는 국제질서의 방어보다는 적극적인 책임 분담에 중점을 두려고 할 것이다. 대외 의존적 경제와 대미 의존적 안보 상황 하에서 국제질서 교란에 취약한 일본으로서는 예방외교를 활용할 것이다. 예방외교라는 차원에서 공적개발원조(ODA)로 대표되는 자금지원 원조는 일본의 개도국 외교에 여전히 중요한 도구가 될 것이다.

일본의 외교전략을 지속하는 데 있어서 앞으로 제기될 문제는 세계질서 유지를 위해서 군사적 공헌에 대한 한계의 설정 문제이다. 이 경우 문제가 되는 것이 군사력 행사를 금지한 헌법적 제약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이다.

지금까지 해석을 통해서 헌법적 한계를 확대하였으나, 헌법 자체를 개정하자는 움직임이 점점 강해지고 있다. 헌법개정에 관한 논의가 상징하는 바와 같이 신세계질서 속의 외교전략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어떻게 형성하는가는 일본 정치의 앞으로 과제가 될 것이다.

김 호 섭 중앙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49세 서울대 정치학과 졸업, 동 대학원 석사, 미국 미시간대 대학원 정치학 박사 저서 및 논문-일본의 우익연구 (공저), "일본의 지역주의" 등

■ 1990년대 이후 日 외교안보정책 키워드

● 보통국가론

1993년 당시 자유당 당수였던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는 자신의 저서 '일본개조계획'을 통해 보통국가론을 주장했다. 일본은 새로운 세기를 맞아 정상적인 헌법과 군대, 외교정책 등을 보유하는 보통국가가 돼야 한다는 것이 골자이다. 보통국가론은 이후 일본 외교안보정책의 대전환을 상징하는 키워드가 됐다. 최근에는 유엔중심의 집단안보를 강조하는 오자와와는 달리 "집단적자위권을 획득하기 위해 개헌도 불사해야 한다"는 미일동맹을 중시하는 보수파의 보통국가론이 힘을 얻고 있다.

● 신방위대강

일본은 95년 11월 탈냉전시대 일본군사력의 수준을 규정하는 신방위계획대강(新防衛計劃大綱·신방위대강)을 책정했다. 미키 다케오(三木武夫) 내각이 1976년 만든 방위대강을 19년 만에 개정한 것이다. 신방위대강은 자위대의 현대화와 정예화 등을 통해 미국과 대등한 입장에서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안보문제에 관여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앞서 탈냉전시대 동아시아전략을 재정립한 미국의 보고서인 '나이 이니셔티브'가 발표된 것이 시사적이다.

● 미일신안보선언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郞) 일본 총리와 빌 클린턴 미국대통령은 96년 미일안전보장공동선언에 서명했다. 이는 일본이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에 적극적으로 협력하겠다는 약속으로, 양국은 이듬해 미일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의 개정을 통해 동맹관계를 재구축했다. 자유무역 체제를 보호하는 것이 국익이라고 판단한 일본은 나름대로 전략과 의도를 갖고 미일안보체제의 광역화를 꾀했는데, 그 노력의 결과가 신안보선언인 셈이다.

● 유사법제

일본의회는 2003년 6월 일본이 무력공격을 받았을 경우를 상정한 유사(有事)관련 3개 법안을 통과시켰다. 77년 법제마련을 위해 연구를 시작한 지 25년 만에 뜻을 이룬 것이다. 이로써 일본은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위한 헌법 개정도 자연스럽게 요구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등 안보·방위태세 강화를 위한 획기적인 교두보를 마련했다. 적극적인 미군 지원체제를 요구한 '아미티지 보고서'(2000년10월)와 2001년 9·11테러가 법안성립에 결정적인 힘이 됐다.

/김철훈기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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