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 1월20일 패트리셔 로버츠 해리스가 미국 주택-도시개발 장관으로 취임했다. 해리스는 미국 역사상 첫 흑인 여성 장관이었다. 성적(性的)·인종적 마이너리티 출신으로 장관 자리에까지 올랐다는 점에서 그는 어제 이 난의 주인공이었던 프랑수아즈 지루를 닮았다. 지루가 프랑스 여성부 장관과 문화부 장관을 잇따라 역임했듯, 해리스도 주택-도시개발 장관과 건강-교육-복지 장관을 잇따라 지냈다.해리스는 시카고 근교 매툰 출신이다. 1924년 5월31일 생. 자신의 장관 임명을 반대하는 공화당 소속 상원의원들 앞에서 해리스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들은 내가 누구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식당차 웨이터의 딸로 태어난 흑인 여성이다. 워싱턴 백인 거주지역의 집을 살 수 없었던 흑인 여성이다." 가난하게 자라난 흑인 여성답게, 해리스는 주택 문제를 다루는 부처의 수장이 되자마자 빈민에게 싼값으로 살 곳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짜고 실천하는 데 진력했다.
가난한 부모에게서 태어나기는 했지만, 해리스는 자신의 노력으로 젊은 시절 이미 중산층에 진입했다. 그는 하워드 대학을 최우등으로 졸업한 뒤 모교의 교수와 결혼했고, 그 자신 뒷날 하워드 법과 대학 학장까지 지냈다. 1963년 당시 법무 장관이었던 로버트 케네디를 만난 뒤 민주당원이 된 그는 린든 존슨 행정부에서 룩셈부르크 주재 대사를 지냈고, 하워드 대학으로 돌아와 가르치다가 급진적 학생들과의 마찰 끝에 교수직을 사임한 뒤에는 IBM 이사를 지내기도 했다. 지미 카터가 그를 장관으로 임명하기 전부터 해리스는 많은 흑인 여성들의 역할 모델이었다. 로널드 레이건의 집권 뒤 건강-교육-복지 장관직을 물러난 그는 이듬해인 1982년 워싱턴 시장 선거에 나섰으나 낙선했다. 해리스는 1985년 3월23일 유방암으로 작고했다.
고종석
/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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