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거제도에는 유난히 까마귀가 많다. 이곳의 한 산에는 맑은 날 해질 무렵이면 장관이 펼쳐진다. 수백 마리의 까마귀가 산정에 모여 서로 까불며 노는 것이다. 그렇게 함께 어울려 놀고는 제 잠자리로 돌아간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다시 한 곳에 모여 이리 날고 저리 뛰며 함께 우애를 나눈 뒤 제 삶터로 간다.그렇게 매일같이 아침 저녁으로 모여 우애를 나누는 새가 바로 까마귀다. 까마귀는 조직의 이로움을 그 어떤 새보다도 잘 안다. 그래서 똑똑한 까마귀가 나오면 그 주위에 수백 마리의 까마귀가 모여든다. 마치 영웅이 태어나면 그 주위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 듯이. 하지만 대장 까마귀는 무리를 이끌되 군림하지 않는다. 그래서 무리에서 가장 서열이 낮은 힘 없는 까마귀와도 먹이를 함께 나눈다. 닭들이 약한 닭을 집중 공격하여 못살게 구는 것과는 전혀 딴판이다.
어른들의 말씀에 의하면, 옛날에는 까마귀들이 마을 옆에 있는 느티나무에 둥지를 틀고 사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까마귀들은 신기할 정도로 마을 사람들의 얼굴을 모두 기억했다고 한다. 그래서 마을 사람 중 누가 마을 밖에서 사고라도 당하면 까마귀가 먼저 알고 마을에 까욱 까욱 소식을 전해주었다는 것이다. 수명도 길어 장수하면 60년쯤 산다고 하니, 옛날 사람들의 수명이 50세 정도였던 것을 생각하면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옛날 고구려, 백제 시대에는 까마귀를 나라 새(國鳥)로 숭배했다. 그래서 '태양의 정(精)'이라 하여 태양 안에 까마귀를 그려 넣었다. 고구려의 환웅 격인 해모수가 머리에 꽂았던 깃털도 까마귀 깃털이었다.
언제부턴가 사람들이 싫어하자 제 스스로 우리 곁을 떠난 까마귀. 하지만 그들은 떠나면서도 우리에게 반포지효(反哺之孝)의 지극한 효성과 사랑을 가르쳤다. 고향가는 길에 혹시라도 그들을 만나면 반가이 맞아줄 일이다.
서 정 록 한국고대문화사 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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