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역사와 영토 문제 등을 둘러싸고 한국 중국 일본의 분쟁이 커지는 한편에서 화해와 협력을 지향하는 동아시아 구상을 담은 책이 잇달아 출간돼 눈길을 끌고 있다. 국가 패권주의, 국수적 민족주의를 넘어 소수자와 약자의 인권에 주목하고 시민의 힘을 통해 평화로운 아시아 공동체를 구상하자는 이런 주장은 동북아 3국의 갈등을 극복하는 단기 해법은 물론 궁극적 지역 협력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어서 주목된다.서남동양학술총서의 하나로 나온 '주변에서 본 동아시아'(정문길 등 엮음·문학과지성사 발행)는 '동아시아론'이 국가를 단위로 한 사고를 넘어서지 못할 때 본래 의도와 무관하게 국가주의와 공모하거나 타협하는 결과가 된다는 반성에서 출발했다. 이 지역에서 오랫동안 패권을 누려온 중화주의, 일본의 대동아공영권 구상, 이어 제국주의 미국의 등장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이른바 '중심'이 아니라 '주변'의 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총서 편집위원인 백영서 연세대 교수는 '국민국가 형성 과정에서 주변적 존재로 무시돼 온 국가 형태를 지니지 않은 무수한 사회'에 주목하고, "그 주변의 정체성을 새롭게 정립해 전체 구조를 변화시키는 동력을 확보함으로써 주변에 내재하는 비판성을 제대로 발휘하게 하는 지적·실천적 수행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책에서는 동북아를 비롯한 세계 각국 학자와 저술가들이 중국의 위상과 중국성의 의미를 대만, 홍콩 등 다양한 지역과 소수민족의 시각에서 재조명하고, 티베트가 중국과 빚고 있는 갈등, 오키나와(沖繩)와 재일 한국인이 일본과 겪고 있는 문제 등을 살핀다. 정답을 하나로 찾기는 힘들지만 소수자의 시각에서 볼 때 문제에 어떠한 방식으로 접근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시사를 얻을 수 있다. 총서 편집위원장인 최원식 인하대 교수는 "새로운 동아시아론의 출발은 중국과 일본이라는 변수를 싸 안으며 지역의 평화를 구축하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아시아 시민 사회의 현황을 비교한 '아시아의 시민사회:개념과 역사'(조효제 등 지음·아르케 발행)는 지역 연대의 핵심으로 시민사회를 꼽고 각국에서 시민사회가 발전해 온 역사와 실태를 조명했다. 중국 사회는 여전히 당과 국가의 수직 관리 체제에 묶여 시민이 들어설 공간이 없지만 미약하나마 그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거나(이남주 성공회대 교수), 일본에서 시민사회라는 용어가 마르크스주의 전통과 밀접하게 연관돼 금기로 여겨지는 상황(권혁태 성공회대 교수)은 동아시아 협력의 토대와 관련해 시사점이 적지 않다.
재일동포 학자인 강상중 도쿄(東京)대 교수의 최근 저서를 번역한 '세계화의 원근법' '내셔널리즘'(이산 발행)은 획일적 세계화 시대에 새로운 시민운동을 모색하려는 시도이다. 일본식 민족주의의 형성과정을 분석하고 그 극복 방안을 찾는 과정에서 강 교수 역시 소수자와 소도시 및 지방의 공공공간에 주목한다. 이런 공동체가 국경을 넘어 연대할 때 민족주의와 국가주의를 넘어선 새로운 인식의 지평이 열릴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민족주의, 국가주의, 일국 패권주의를 넘어서기 위한 '정답'은 여전히 토론 과정에 있다. '주변에서 본 동아시아'에 실린 '주박(呪縛)에서 풀린 티베트'에서 영국 저술가 이안 부르마는 "중국이 민주주의를 폭 넓게 도입하는 것은 확실히 도움이 될 것이지만 '하나의 중국'이라는 이상을 중국이 포기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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