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은 다가오는데 한 달 넘도록 남편 장례식도 못 치르고 있으니… 가슴이 메어 터질 것 같습니다."지난달 말 아들과 함께 입국한 재중동포 신금순(43·여·헤이룽장성)씨는 지난달 8일 서울 종로구 혜화동 도로변에서 동사(凍死)한 남편(김원섭·45)의 영정을 들여다보며 19일 눈물을 글썽거렸다. 종로구 연지동 기독교연합회관에서 농성중인 신씨는 "올핸 남편과 함께 춘절(春節·중국의 설)을 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라며 고개를 떨궜다.
민족의 명절인 설이 코앞에 다가왔지만 재중동포를 비롯한 외국인노동자들은 고통과 한숨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한 해의 시름을 털고 타향살이의 위안을 얻던 예년 설과 달리 정부의 불법체류자 일제 단속과 강제추방 방침과 맞물려 가장 고통스런 시간으로 뒤바뀐 것이다.
해마다 이맘때 자체 준비했던 각종 설 행사도 정부의 단속 강화로 대부분 취소되거나 축소됐다. 지난해 11월부터 기독교연합회관 등지에서 정부 단속에 대한 항의농성을 벌여온 재중동포 450여명은 복지단체의 후원으로 열릴 예정이던 설 행사를 취소했다. 농성중인 재중동포 이모(41)씨는 "언제 어떻게 잡혀갈지 몰라 외부 출입은 일체 삼가고 있다"며 "복지단체가 여는 행사엔들 선뜻 참가할 수 있겠느냐"고 하소연했다. 기독교회관 관계자는 "정부의 방침 이후 재중동포들이 행사를 열 마땅한 장소도 없는 것이 사실"이라고 전했다. 명절이면 떠들썩했던 분위기도 사라진 지 오래다. 재중동포 60여명이 거주중인 서울 관악구 봉천동 '사랑의 집'도 예년과 달리 차분하다. 사랑의 집 이병희(49·여) 전도사는 "동포들이 한결같이 말없이 착잡한 표정으로 고국에 대한 서러움을 토로하고 있다"고 전했다. 지모(65)씨는 "우리도 설이면 똑 같이 떡국을 먹는데 왜 범죄인 취급을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재입국 허용을 조건으로 상당 수 동포들이 자진 출국한 서울조선족교회도 명절 한파가 매섭다. 조선족교회 김용길 목사는 "설상가상으로 지원단체의 후원마저 줄어 떡국, 만두 등 명절 음식 준비는커녕 3,000원짜리 도시락 하나로 설을 보내야 할 판"이라고 푸념했다. 장모가 정부 단속에 적발돼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에 수용돼 있다는 전모(41)씨는 "민족 명절에도 마음을 놓지 못하는 처지가 서글프다"고 말끝을 흐렸다.
/이준택기자 nagne@hk.co.kr
신재연기자 poet33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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