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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설 政談에 거는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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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설 政談에 거는 기대

입력
2004.01.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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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몇 명이 식당에서 소주잔을 기울이며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상사인 듯한 사람이 말을 꺼냈다. "이제 학연이라는 게 사라질 날도 기껏해야 10년 정도 남았지. 평준화세대가 벌써 40대 중반이 됐으니…." 옆에서 말을 받았다. "명문고 출신들이 일선에서 사라지면 아무래도 그렇게 되겠지요. 그런데 그 때 되면 무슨 무슨 외국어고, 과학고 해가며 새로운 학연이 생기지 않을까요." "음… 그것도 그렇네."상사가 다시 말을 던졌다. "지연도 우리 아이들이 성인이 될 때 쯤이면 상당히 완화되지 않을까? 인구의 절반이 수도권에 모여 있는데 아이들이 부모 고향을 따질 리도 없고." 옆에서 다시 되받았다. "그럴 듯 한 얘기지만 지방에는 아이들이 없나요. 걔들도 커가면서 저절로 지역주의에 물들 텐데." 여기에 다른 동료가 끼어 들었다. "아마 그 때 되면 서울에서도 강남 출신이니 강북이니 하면서 서로 쥐어뜯고 싸울걸요." 이들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우리에게 지연이니, 학연이니 하는 것은 원죄에 가까운 것일까. 따지고 보면 정치판이 이렇게 엉망진창이 되고 부패덩어리가 된 것도 다 그 때문인데.

얼마 전에 의원 8명이 줄줄이 교도소로 향하는 것을 보고도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누구는 그날을 '치욕의 금요일'이라고 불렀다. 헌정사상 유례가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그 것은 국회만의 수치가 아니다. 온 국민이 부끄러워 할 일이다. 누가 그들을 뽑았는가. 결국 그 부담이 국민에게 돌아와 지금의 참담함을 연출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져 나오는 정치인들의 썩은 속살을 보고 모두가 손가락질한다. 하지만 유권자 스스로 반성하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왜 그런 정치인들이 나타났는 지에 대한 성찰이 없다. 선거철만 되면 은근히 향응이나 접대를 기대하지 않았는지. "우리가 남이가" "우리가 남이다냐" 하며 출신학교와 고향을 따져보지는 않았는지.

지금도 그렇다. 말로는 이번에는 반드시 국민 무서운 것을 보여 주자고 한다.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그런 것 따지지 말고 개혁적이고 도덕적인, 그런 참신한 사람을 뽑자고 한다. 그게 국민이 살고 나라가 사는 길이라고 한다. 백번 천번 맞는 말이다.

그러나 과연 그렇게 될까. 막상 선거운동이 시작되면 언제 그랬느냐는 것처럼 개혁의 목소리는 잦아들고 이편이냐, 저편이냐며 편가르기에 바쁘지 않을까. 저 사람은 어느 학교 출신이고, 고향은 어디고 하며. 그러다 보면 또 영남은 어느 당 싹쓸이, 호남은 어느 당 석권 하는 구태가 되풀이되지 않을까 모르겠다.

이번 설 고향집 사랑방에서 펼쳐질 노변정담(爐邊政談)은 그 어느 때보다 각별하다. 친척과 친지들이 모이면 화두는 단연 총선 등 정치판이 될 것이다. 노무현 정부 1년의 평가가 쏟아지고, 대선자금과 측근비리 수사를 통해 나온 추한 정치인들도 도마에 오를 것이다. 그리고 어떤 후보가 새로운 정치판을 이끌고 나가기에 적합한 인물인지 윤곽이 드러날 것이다. 정치판을 확 뒤집느냐, 무늬만 바꾸느냐는 여기서 결정된다.

이번에는 귀경길에 고향의 정뿐 아니라 굳은 결심을 한 보따리씩 안고 와야 한다. 4·15 총선이 불과 80여 일 앞으로 다가왔다. 이제는 정말 유권자가 달라져야 한다. 4월16일자 신문 1면에 '유권자 혁명'이라는 시커먼 신문 제목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하자.

이 충 재 사회2부장 c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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