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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정치권 물갈이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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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정치권 물갈이 이렇게

입력
2004.01.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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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대선 때의 불법 정치자금 조성과 각종 비리 혐의에 연루된 국회의원들이 속속 소환되거나 구속되고 있다. 또한 일부 원로 정치인들이 불출마를 선언하고 있어서 앞으로 정치권의 세대 교체와 물갈이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것 같다. 따라서 17대 총선은 젊은 정치지망생들의 대거 참여로 치열한 각축장이 될 전망이다. 이런 현상은 고무적이지만 한편으로 우려되는 바도 적지 않다.지금까지 정치인의 충원과정은 1인 지배체제의 정당 하에서 국민의 여망과는 달리 심히 왜곡된 측면이 많았다. 이에 비쳐볼 때, 요즘 각 당이 경쟁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국민경선제의 도입은 정당의 민주화, 정치의 선진화라는 측면에서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다. 다만, '동원된' 자기들만의 잔치로 끝나지 않아야 한다는 전제가 따른다.

우리 정치사의 특징은 매번 총선 때마다 국민들의 물갈이 요구가 높았다는 점이다. 최근의 예만 보더라도 1996년의 15대 총선과 2000년의 16대 총선에서 초선의원 비율이 각각 45%와 40%로 매우 높았다. 특히 16대 총선에서는 총선시민연대의 낙천·낙선운동과 국민들의 '바꿔' 열풍에 힘입어 정치개혁을 기치로 내건 정치신인들이 대거 당선되었다.

정치신인들의 의정활동은 상대적으로 개혁적인 측면은 있었으나 전체적으로 국민들의 여망에 부응하지는 못하였다. 신진 정치인들의 나이가 젊다고 해서 그들의 정치 행태가 반드시 참신한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유권자들은 나이보다는 정치인들의 정책, 사고방식, 판단력, 전문성 등을 선택의 기준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물론 정치 지망생들도 정치입문에 앞서 냉철한 자기성찰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우리의 옛 선비정신에 사비위빈(士非爲貧)이라는 말이 있다. 벼슬은 도를 펴기 위한 것이지 가난을 면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정치인에게는 국민과 국가를 위하여 봉사할 수 있는 열정이 필수조건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오늘날의 개념으로는 선비가 학자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관료와 정치인 모두를 포함하기 때문에 정치인들이 깊이 새겨두어야 할 말이다.

지금 정치신인들은 저마다 한국사회의 개혁과 진보를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그에 합당한 품성을 가지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회의를 품지 않을 수 없다. 시대의 지사였던 장준하 선생이 진보주의자가 갖추어야 할 품성으로 지적한 '혁명적 결백성'은 이런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많다. 또한 21세기형 정치인에게 요구되는 기본적인 자질은 특정분야에서의 전문성과 시대의 흐름을 꿰뚫어 볼 수 있는 통찰력이다.

20세기가 거시정치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미시정치, 즉 생활정치의 시대이다. 이미 선진국에서 주요 담론으로 정착된 여성 환경 평화 반핵 시민발기 납세거부 소비자보호 시민불복종운동 등 미시적 다원주의가 이제 한국 사회에서도 적용되어 국민들이 정치적 주체로 거듭날 수 있어야 한다.

오늘날 세계화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다. 세계화의 높은 파도는 우리에게 위기인 동시에 기회이다. 영국의 정치사회학자인 기든스의 지적처럼, 세계화는 단순히 상호교류의 양적인 증대를 넘어서 우리의 삶의 시간과 거리를 재구성하는 과정, 다시 말해 그 관계가 질적으로 심화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우리의 정치인들은 우리의 삶을 통째로 변화시키고 있는 세계화의 본질을 놓치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정치인들에게 통찰력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기이다.

이번 총선에 불출마를 선언하는 사람들이 많다. 어떤 배경에서이든, 떠날 때를 알고 떠나는 사람의 뒷모습은 아름다워 보인다. 더욱이 정치가는 무대에서 퇴장할 때가 멋있어야 한다. 더 많은 멋진 퇴장을 기대해 본다.

송 병 록 경희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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