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요즘 꼼짝 없이 여든 살 할머니 '모드'로 살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내 건강과 시간이 허락한다면 1년에 한 번은 '모드'로 살려고 마음먹고 있다. 뜬금없는 소리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9일부터 대학로 설치극장 정미소에서 박정자의 '19 그리고 80' 공연을 하고 있다. 거기서 내가 맡은 역이 바로 모드다.동물원의 더러운 수조에서 헤엄치고 있는 물개를 자신의 욕실로 끌고 오는가 하면 가로수를 뽑아다가 숲에 심어주는 그녀. 작은 풀 한 포기까지 생명있는 모든 것을 사랑하는 환경주의자 모드는 우주비행사가 되는 꿈을 여전히 버리지 않은 엉뚱하고도, 귀엽고, 사랑스러운 할머니다. 그녀는 엄마와의 갈등, 신(神)의 존재에 대한 회의 등으로 우울증에 빠져 자살을 생의 꿈이자 취미로 삼으려고 하는 문제 소년 헤롤드와 사랑에 빠진다. 사람들은그들의 로맨스를 두고 엽기다 뭐다 하지만 나는 그 사랑을 충분히 이해한다. 사랑이야 말로 빨주노초파남보 형형색색 아닌가.
"세상에 주인은 없어. 모든 것은 잠시 있다가 사라질 뿐이야." 죽음을 앞두고 모드는 슬퍼하는 헤롤드를 향해 그렇게 속삭인다. 죽음마저도 삶의 한 부분으로 인정하는 경지에 이른 모드의 그 지혜로움과 가슴 따뜻함에 나는 반하지 않을 자신이 없다. 게다가 모드는 실제 내 모습과도 닮은 점이 많다. 내가 80이 될 때까지 매년 '19 그리고 80'을 하겠다고 마음 먹은 것도 다 모드가 좋아서다.
그런 '19 그리고 80'을 만난 건 1987년 최불암씨가 운영하던, 압구정동 현대백화점 지하에 있는 현대극장에서였다. 그때는 김혜자씨가 모드 역을 맡았다. 작품이 참 좋았다. 그러나 아쉬움도 그만큼 컸다. 우선 장소가 너무 좁아 제대로 무대 장치를 할 수 없었다.
'19 그리고 80'을 제대로 공연하려면 무대에 무엇보다 큰 나무 한그루가 있어야 한다. 팔십 먹은 할머니가 나무 위에 올라가 19살 먹은 헤롤드와 사랑을 속삭이는 장면을 관객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다. 그러나 그때는 나무가 없었다. 극장이 너무 좁은 탓이었다. 김혜자씨의 나이도 너무 어렸다. 당시 사십대 중반이던 김혜자씨가 자기 나이의 두 배가 넘는 모드를 원숙하게 연기한다는 건 조금은 무리였을 터였다.
어쨌든 '19 그리고 80' 공연은 관객 동원에 성공했다. 자연스럽게 연장공연이 결정됐다. 최불암씨가 내게 모드 역을 부탁했다. 나의 대답은 'NO'였다. 남이 하던 배역을 하기도 싫었고 모드를 연기하기에 채 50도 되지 않은 자신이 너무 젊다고 느껴졌다. 거절은 했지만 그 후로도 아주 오랫동안 소가 되새김질을 하듯 나는 시간 날 때마다 '19 그리고 80'이라는 화두를 꺼내 질겅질겅 씹어댔다. 그리고 마침내 기회가 찾아왔다. 윤석화가 대학로에 설치극장 정미소를 열고 개관 기념 공연을 부탁했다. 울고 싶은 데 뺨 때리는 격이었다는 표현이 적절할지 모르겠다.
하여튼 나는 모드 역만 맡는 걸로는 부족해서 제작과 기획을 맡았다. 연출은 미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장두이에게 맡겼다. 장난기 많은 소년 같은 그는 아기자기하고 깜찍하게, 그리고 재미있게 작품을 만들어 냈다. 결과는 성공 그 자체였다.
내 평생 최고의 선물이었던 '19 그리고 80'을 위해 공연 중에 나는 물구나무를 섰다. 그건 일종의 관객 서비스였다. 모드의 엉뚱하고 귀여운 모습을 그렇게 관객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육신은 그러나 나의 이런 무식함에 무자비한 반란을 일으켰다. 내 나이도 육십이 넘었다. 매 공연마다 물구나무를 서 대니 몸이 견뎌낼 재간이 없을 수밖에. 점차 어깨와 목이 쑤시고 아파서 견딜 수 없었다. 결국 목디스크라는 무시무시한 증상이 나타나고 말았다. 눈물을 머금고 물구나무 서기를 포기해야 했다. 그러니 '박정자의 물구나무 서기'는 다시는 보지 못할 구경거리였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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