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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권이혁 성균관대 이사장―명주완 前 서울의대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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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권이혁 성균관대 이사장―명주완 前 서울의대 학장

입력
2004.01.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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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이혁(81) 성균관대 재단 이사장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인연은 서울대 의대 학장을 지낸 명주완(1905∼77) 선생과의 그것이다. 권 이사장은 문교부 장관, 서울대 총장, 학술원 회장 등 다채로운 경력만큼이나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졌다. 그렇지만 명 선생과의 인연은 영원히 잊을 수 없다. 그에게 배운 리더십이 훗날 다양한 공직을 무리 없이 소화해내는 원동력이 됐기 때문이다.권 이사장은 1943년 경성제대 의학부(현 서울대 의대)에 입학하면서 명 선생을 처음 대면했다. 서울 태생의 명 선생은 경성제대 의학부 1회 졸업생으로 신경정신과목을 담당하던 교수였다. 명 선생의 별명은 이름 그대로 '명 교수'였는데, 여기에는 '강의를 잘 한다'와 '특별하다'는 두 가지 의미가 있었다.

명 선생은 출석 점검 때 학생을 이름이 아니라 번호로 불렀다. 그것도 순서대로가 아니라 무작위로 불렀다. "17번, 2번, 51번…." 학생들은 언제 자기 번호가 불릴지 몰라 바짝 긴장해야 했다.

"당시 내 동기가 모두 53명이었는데, 신기하게도 교수님은 단 한번도 중복해서 부르지 않았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선생님은 학생들이 자신을 기억하도록 만들었지요."

권 이사장은 56년 서울대 의대 조교수로 임용되면서 이 대학의 학장을 맡고 있던 명 선생과 본격적으로 인연을 맺게 된다. 가까이서 본 명 선생은 의대 예산을 10원 단위까지 꿰고 있을 정도로 치밀했다. 그래서 명 선생에게 자금결제나 보고를 하는 직원들은 그 때마다 진땀을 쏟고 나왔다. 그의 꼼꼼함 덕분에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서울대 예산 집행의 낭비가 크게 줄었다. 그러면서도 명 선생은 회의를 할 때 반드시 유머로 시작해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드는 능력을 갖고 있었다.

명 선생이 특히 존경스러웠던 것은 그의 유연하게 열린 사고와 넓은 도량에 있었다. 흔히 교수들이 자기 세계에 갇혀 남의 충고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과 대조적이었다.

서울대 보건대학원을 설립할 때의 일이다. 미국 미네소타대에서 공중보건학을 공부한 권 이사장은 예방의학을 연구하는 대학원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었으나 명 선생은 이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권 이사장은 고민에 빠졌다. 이때 필리핀 마닐라에서 '세계 예방의학회 정기총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접하고 명 선생에게 대회 참석을 적극 권유했다. 선생은 이 대회에 참석했고, 거기서 치료보다 예방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우쳤다. 그리고 자신의 고집을 꺾고 곧바로 권 이사장의 적극적인 후원자로 바뀌었다.

명 선생은 서울대에 단 3대 뿐이던 공무용 지프를 권 이사장에게 내주며 독려했다. 그리고 권 이사장이 감당하기 어려운 인사가 있으면 자신이 직접 나서 협조를 구했다. "서울대가 국립대이다 보니 기구를 새로 설립하려면 국회에까지 안건이 올라갑니다. 선생님의 도움이 없었다면 보건대학원 설립은 불가능했을 겁니다."

서울대 보건대학원은 59년에 개원했고 명 선생이 초대 원장을 겸임했다. 권 이사장은 76∼78년 보건대학원장을 맡았다. "선생님은 아래 사람을 때로는 질책하고 때로는 격려하면서 리더의 존재를 강하게 각인시키면도 자신의 실수를 인정할 줄 아는 타고난 지도자였습니다."

권 이사장은 명 선생에게 배운 리더십의 기술을 공직에 있으면서 그대로 적용했다. 그가 많은 공직을 무리 없이 해낸 것도 그 덕분이다. 명 선생은 서울대병원장, 서울시의사회장, 대한의학협회장 등을 지내고 77년 세상을 떠났다.

/이민주기자 m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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