촬영을 하다 보면 지방 출장이 잦다. 하루에 한 번 정도는 집에 전화를 거는데 대개는 아이들 안부를 묻는 내용이다. 그런데 아이들보다 안부가 더 궁금한 대상이 생겼다. 새로 기르기 시작한 산호와 해수어다.원래 한 가지 생각, 한 가지 일밖에 집중할 줄 모르는 성격이라 일터에서는 집 걱정 안하고 집에 오면 일 생각을 잊는다. 헌데 요즘은 일터에서도 물고기 생각하고, 집에서도 어항만 들여다보고 있으니 가족들 불만이 보통이 아니다. 사실 '니모를 찾아서'를 본 아내와 아이들의 애원으로 시작된 취미인데 오히려 내가 중독이 됐다.
산호 어항은 돈 먹는 기계다. HQI 램프, 스키머, 여과기, 섬프 등 이름도 외우기 어려운 복잡하고 비싼 장비는 말할 것도 없고, 주먹 만한 산호 하나가 몇 만원에서 몇 십 만원까지 나간다. 물고기는 그나마 싼 편이다.
게다가 담수어와 달리 생물이 살 수 있는 물을 만드는 데만 한 달이 걸린다. 텅 빈 어항을 보며 한 달을 꾹 참아야 생물을 넣을 수 있다. 당연히 마구 사게 된다. 또 갈수록 귀하고 키우기 어렵다는 쪽에 욕심을 낸다. 결국 수집벽이 생기고 돈이 자꾸만 들어간다.
식구들이 잠든 밤에 몰래 일어나 학교 다닐 때도 관심 없던 화학실험을 한다. 각종 검사 세트로 비중, pH, 탄산염경도, 질산염과 칼슘 농도 등 수질 관련 검사를 하고 비싼 수질 보완제를 투여한다. 아내가 깰까 봐 조마조마하면서…. 내가 생각해도 중증이다.
그래도 너무 행복하다. 거실 한 쪽에 놓인 아름다운 작은 바다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온갖 잡념이 가신다. 내 바다 속 산호와 해수어들에게 과연 쾌적한 삶을 제공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놈들은 나한테 참으로 쾌적한 휴식을 준다.
이 재 규 MBC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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