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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1010>지루

입력
2004.01.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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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1월19일 프랑스 언론인 프랑수아즈 지루가 87세로 작고했다. 지루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 언론계와 정계에서의 두드러진 활동으로 여성들의 역할 모델이 된 사람이다. 파리수아르 기자로 언론계에 뛰어든 그는 37세 때인 1953년 장자크 세르방슈레베르와 함께 시사주간지 렉스프레스를 창간했다. 지루는 편집장과 발행인으로 1974년까지 이 주간지를 이끌었다. 당초 좌파 색채가 강했던 렉스프레스는 1960년대 이후 점차 중도적 입장으로 선회했지만, 그가 이끌던 시절 이 주간지는 일간지 르몽드와 함께 프랑스의 지적 저널리즘을 대표했다. 지루는 렉스프레스를 떠난 뒤 지스카르 대통령 밑에서 여성부 장관과 문화부 장관을 차례로 지냈다.지루의 이 성취는 그 자신의 재능과 노력에 프랑스 사회의 개방성이 버무려지며 이뤄진 것이었다. 지루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태어난 터키인이었고, 한 때 오스만터키의 전신국장을 지낸 아버지가 죽자 14세에 정규 교육을 중단해야 했다. 만년의 지루는 자신이 프랑스 주류 사회에서 강한 인종주의를 느꼈다고 고백했지만, 적어도 귀화 여성을 언론계와 정계의 스타로 받아들였을 만큼은 그 사회가 열려있었던 셈이다.

10대에 영화감독 마르크 알레그레의 기록 담당 비서로 생업에 뛰어든 지루는 언론계로 가기 전까지 영화계 주변을 돌며 시나리오나 영화 주제가 가사를 썼다. 지루에게 이 시기는 가난과 무명(無名)에 치이며 가장 힘들게 버텨낸 나날이었지만, 그는 바로 이 시절 자신의 커리어를 도와줄 영향력 있는 사람들을 만났다. 뒤에 렉스프레스 편집장으로 일하던 시절 지루는 전통적 영화에 맞선 젊은 영화인들의 전위적 영화 운동을 '누벨 바그'(새 물결)라고 명명함으로써 영화사에 이름을 새겼는데, 이런 명명의 힘도 필시 그 가난했던 영화판 시절에 길러졌을 터이다.

고종석

/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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