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소련의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에서 대규모 방사능 유출 사고가 발생한 것은 1986년 4월이었다. 방사능 사고로 사상 최대의 비극이었지만 당시 소련 당국은 이를 부인하고 철저히 은폐했다. 그 사이 방사능은 대기를 타고 주변국으로 넓게 번져갔고, 한 달 후 스웨덴에서 방사능 낙진 사실을 밝히고 나서자 더 이상 감추기가 어렵게 됐다. 미하일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그제서야 TV방송을 통해 이를 발표하게 된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이 방송은 거짓이나 은폐를 체질로 하던 소련의 생리가 변화하는 상징적 사건으로 기록됐다. 집권 13개월째였던 고르바초프는 자신이 주창해 온 개방(글라스노스트)과 개혁(페레스트로이카)의 기치를 본격적으로 드높이는 계기로 이를 활용한 것이다.■ 얼마 전 중국 당국이 광둥에서 재발한 사스(SARS)에 대처하는 방식을 소련의 글라스노스트와 같은 맥락으로 해석하는 시각이 있다. 무려 5개월 동안이나 사실을 은폐, 전세계에 사스공포를 확산시켰던 지난해의 경우와는 판이하게 불과 보름 남짓한 사이에 환자 격리, 발병 공개, 대대적 방역의 재빠른 대처를 한 것이 후진타오 주석 체제의 정치적 변신이라는 것이다. 폐쇄적 정보관리를 바탕으로 당의 관점과 이익을 최우선시하던 데서 개방형 정치로의 전환이 읽힌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4월 중국이 뒤늦게 발표한 사스 실태와 보건장관, 베이징 시장의 경질 조치 등이 투명성과 솔직함의 유용성에 대한 후진타오의 각성을 반영하고 있다는 풀이가 제시되기도 한다.
■ 사스 뿐 아니라 또 하나의 사례도 예시된다. 그 무렵 중국은 해군의 잠수함이 침몰해 승무원 70명이 희생되는 참사를 겪고 있었다. 과거 같으면 사실자체가 없는 일이거나, 그 내용에 대해 일절 공개할리가 없는 중국 당국이다. 그러나 5월 들어 중국은 사실을 전면적으로 밝히고 나섰고, 이는 군사적으로나 언론관행으로나 매우 이례적인 것으로 여겨졌다. 인터넷 시대의 한가운데서 더 이상 정보통제가 불가능하다는 판단도 있을 수 있지만, 공개와 개방이라는 새로운 인식이 생겨나고 있다는 예가 되기에 부족하지 않다.
■ 이 얘기들은 무섭게 변하는 중국에 대해 요즘 유행하는 무수한 해석과 전망들 중 작은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중국을 바라보는 우리의 착잡한 입지를 또 한번 떠올리게 되는 대조적 사례이다. 앞으로 나아가는 나라와 뒤로, 아니면 제자리를 맴도는 나라의 대조다. 외교부 장관을 바꾼 자주론 논란도 그렇다. 대미외교를 두고 새 정부 초부터 벌여온 논란이 이제 와 고작 파워게임으로 수준을 달리해 터진 데 불과한 것이 이번 파문이다. 1년이 지나 하는 짓이 지루한 동어반복 뿐이니 답답하기만 하다.
/조재용 논설위원 jae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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