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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이가 고른 책] 주자학과 양명학 <시마다 겐지 지음, 까치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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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이가 고른 책] 주자학과 양명학 <시마다 겐지 지음, 까치 발행>

입력
2004.01.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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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그마한 책에 굉장한 힘이 있었다. 중국 철학 공부를 막 시작하던 무렵, 닥치는 대로 관련 서적을 읽다가 문득 만난 이 책을, 처음엔 하룻밤 사이에 다 읽고는 그냥 던져버렸다. 뭔 소리인지 전혀 몰랐던 것이다. 한 5년이 지난 어느날 숙제로 끙끙대다가, 우연히 다시 집어들었다. 너무 부끄러웠다. 그리곤 공부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저자가 출판사와 책을 내기로 약속한 지 18년 만에 나온 책이라니, 이 책의 팔자도 예사롭진 않다. 책이란 게 언제나 처음의 생각대로 나오지도 않고, 출간 약속 날짜를 지키겠다는 눈물겨운 거짓말을 날마다 반복하는 것을 보는 내 입장에서 볼 때, 이런 책은 괴물 같은 인연의 산물이다.

무엇보다도 양명학을 주자학의 연장으로 보는 이 책은 충격적이었다. 주자학과 양명학은 마치 같은 하늘 아래 도저히 함께 할 수 없는, 금단의 역사 같은 것으로 알고 있던 내게, 이 책은 그 둘이 피와 고통을 거쳐 결국에는 한 자리에서 진실을 요청할 수 있음을 일러주었다. 모든 것에는 단계가 있고, 나름대로의 상황이 있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만나는 이론과 실천은 요단강만큼 아득했다. 반역 같은 양명학에 마음을 열고, 공부를 새로 시작한 것은 이 작은 책 한 권의 마력에서 비롯되었다.

게다가 이 책 뒷부분에 소개된 '유학의 반역자, 이탁오'는 콜린 윌슨의 '아웃사이더'만큼이나 충격적이었다. 거친 반항은 비로소 힘을 지니게 되었다. 이탁오는 전통과 기막힌 현실 속에서 적당한 타협을 하고 있던 내게, 자기 고백 없이는 아무 것도 새롭게 할 수 없음을 질타했다. 그는 익숙한 것을 거부하라고, 그리고 그것을 마음속에서 뜨겁게 용기 내어 지키라고, 또한 '고백적으로 진솔하게' 행동하지 못했던 내게 지금도 늦지 않았다고 말했다. 공부는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물론 나는 이제 학교를 떠난 지 오래 되었고, 더 이상 숙제를 하지도 않는다. 마음으로는 여전히 스스로를 학생이라고 여기지만, 몸은 생존의 계산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한다. 다만 책을 만드는 일이 뼈 속까지 배어버린 지금, 좋은 책을 향한 내 마음의 한 구석엔 늘 이런 충격과 계기를 마련해 준 이 한 권의 책처럼, 내 딸들과 그의 친구들이 어느 날 문득 삶의 전기를 마련할 수 있는 책을 준비해야겠다는 다짐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조원식·소나무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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