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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서/고뇌가 묻어있는 "행동하는 日시인" 詩선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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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서/고뇌가 묻어있는 "행동하는 日시인" 詩선집

입력
2004.01.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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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2004년 새해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지난해에 시작된 전쟁극은 아직도 막을 내리지 않고 있다. 2003년은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함으로써 세계를 전쟁터로 휘몰아친 파란의 한 해였다. 덕분에 한국도 역사의 가해자 편에 가담하는 우를 범하고야 말았다. 도대체 세계가 어디를 향해 줄달음질치고 있는 것인지. 암담한 분위기가 침울하게 지구촌을 짓누르고 있는 가운데 일본에서 '요시모토 류메이(吉本隆明) 시 전집'이 출판되어 화제가 된 것은 어쩌면 필연적인지도 모른다.요시모토 류메이(吉本隆明·원래는 요시모토 다카키이지만 일본에서는 유명한 작가가 되면 이름을 음독하는 관습이 있다)는 전후 일본을 대표하는 사상가이자 시인이다. 2차 대전 이후 요시모토는 문학가들의 전쟁책임론을 주장하여 격렬한 논쟁을 벌이기도 하였고, 1960년대 일본의 학생운동이 한참 치열하게 전개될 당시에는 학생들과 행동을 같이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다. 그래서 그는 시인으로서보다는 사상가로서 더욱 더 이름이 알려져 있기도 하다. 그러나 그는 역시 시인이다.

1,800페이지가 넘는 이 책의 후기에서 그는 "시를 제일 우선으로 하는 원칙을 지켜왔다"고 쓰고 있는데, 그의 파란만장한 팔십 생애를 알고 나서 이 글을 읽으면 가슴이 멍해지는 감동이 있다.

책에는 1940년대 초반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그가 쓴 작품이 총망라되어 있는데, 거기에는 십대 소년의 푸른 열정이 넘치는가 하면 팔십에 가까운 대가가 다다른 경지가 엿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사상'을 어떻게 '시'로 표현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몇십 년에 걸친 그의 시 세계를 관통하는 일관된 문제의식이다. 그리고 그는 이 어려운 '결합'을 이루어낸 보기 드문 시인 중의 한 사람이다.

'1953년 여름은/ 본래 너의 고뇌의 계절이고/ 네가 너의 생존의 이유로서/ 남겨둔 장소는 조금밖에 남지 않았다/ 너는 트럼본 소리에 끌려/ 위험한 곡예사의 흉내를 낸다/ 너는 역설에 의지하여/ 너의 고뇌를 춤추게 한다'

1953년에 쓴 '푸른잎 그늘에서'라는 작품의 제2연이다. 이 작품이 50년이라는 세월을 뛰어넘어 2003년이라는 '고뇌의 계절'을 너무나 적절하게 표현한 느낌이 드는 것은 나 혼자만의 착각일까. 2004년 새해에는 부디 '고뇌'가 종식되고 '희망의 계절'이 찾아오길!

황선영 도쿄대 비교문화· 비교문학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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