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언 지음 이룸 발행·9,000원
김도언(32)씨가 첫 소설집 '철제계단이 있는 천변풍경'을 출간했다. 그는 1998년 대전일보 신춘문예에, 이듬해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돼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99년 1월1일 아침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소년, 소녀를 만나다'를 읽은 소설가 이순원씨가 "손바닥 가득 촉촉하게 배어나오던 흥분과 긴장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그가 누구인지 궁금해서 한국일보 문화부에 그의 전화번호를 물어 내가 먼저 전화를 걸었다"고 찬사를 보낸 젊은 작가이다. 그는 서점과 잡지사, 출판사에서 '밥벌이'를 하면서 틈틈이 소설을 써서 5년 만에야 첫 창작집을 세상에 내보냈다.
"오른손잡이인 나는 오른손의 습속과, 역시 관행에 불과할 뿐인 왼손의 저항을 함께 경멸한다. 세상과 타자에 대해서 만성적 불안과 공포를 가지고 있고 그것을 잊기 위해 왼손과 오른손을 끝없이 움직이며 글을 쓴다." 이 말은 자신의 소설에 대한 비교적 명쾌한 설명이기도 하다. 김씨의 작품은 대개 현실의 윤리와 가치로는 허용되지 않는 사유와 행위를 다루면서도, 그것이 상상의 울타리를 뛰어넘지 못하는 것임을 인식하게 한다. 현실과 상상의 사이에 끼어 있는 작가적 불안감이 어렵지 않게 감지된다.
표제작 '철제계단이 있는 천변풍경'에서는 현실의 '긴장'과 현실을 잊게 하는 '이완' 사이에서 서성이는 작가의 망설임이 엿보인다. 버스 정류장에서 우연히 만난 여자를 데리고 집에 왔다. 스물여덟개의 철제계단이 있는 방에서 여자와 동거에 들어갔다. 여자의 지인들과 만나 광란에 빠지고는, 여자와의 헤무른 생활이 청춘의 삶에서 새로운 전력질주를 위한 잠깐의 휴지(休止)였음을 깨달았다.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인 '소년, 소녀를 만나다'는 우연히 만난 소녀와 사랑하는 형에 대한 질투와 콤플렉스에 시달리는 소년의 이야기다. "친형을 살해하겠다는 소년의 결심은 '악몽의 탈주'에 값하고, 그것을 '아주 거룩하면서도 역사적인' 사건으로 인식하는 소년의 욕망은 사뭇 이채롭다"(평론가 우찬제).
이렇게 '금지된 욕망'으로 들뜬 심리는 '기호태傳(전)'에서 재미있게 묘사된다. 동료 소설가에 대한 질투로 서점에서 몰래 그의 책을 한 쪽 씩 찢어내는 화자의 심정은 불안하면서도 희극적이다. '기호태傳'에서 결국 찢겨있는 것은 자신의 소설임을 발견한 결말이 그러하듯, 그의 작품은 대개 불안을 인위적으로 차단하려는 것으로 끝난다. 불안과 정면으로 맞서기를,"불안의 뿌리로 내려가고 내려가서, 탈주하고 탈주하여, 불안의 심연에 이를 수 있기를" 바라는 평론가 우찬제씨의 당부는 그의 다음 소설이 나아갈 방향이다.
/김지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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