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택 지음·이재원 옮김 이후 발행·1만5,000원
"매일, 매달 혹은 매년 신문에 인간의 사악함이 빚어낸 끔찍하기 이를 데 없는 소식이 실리지 않을 때가 없다. 문명화한 인간은 매일 이 메스꺼운 전채로 아침 식사의 식욕을 돋운다."
프랑스 시인 보들레르는 1860년대 초 이렇게 빈정댔다. 오늘날 세계는 폭력이나 잔인함을 보여주는 이미지로 더욱 더 차고 넘친다. 기술 발달 덕분에 먼 나라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재앙이나 참혹한 전쟁도 TV 등 각종 매체를 통해 바로 알 수 있게 됐으니 말이다.
문제는 그런 이미지가 워낙 홍수를 이루다 보니 지독하게 고통스러운 장면조차 스펙터클한 구경거리로 전락했다는 점이다. 사실 지구 저 편에서 누군가 전쟁이나 기아, 고문 등 부당한 폭력에 짓밟히고 있음을 전하는 뉴스를 대할 때마다 우리는 안도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다행히도 내가 당한 일이 아니므로. 희생자에 대한 연민이나 가해자를 향한 분노가 솟구치는 것도 잠시, 우리는 곧 잊는다. 내 잘못이 아니고 내가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므로. 우리는 남의 고통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나눌 힘을 잃어버린 게 아닐까.
미국 작가 겸 예술평론가 수전 손택(71)이 쓴 '타인의고통'은 그런 질문으로 시작한다. 미군 폭격기가 한창 바그다드 외곽을 때리던 지난해 3월 미국에서 처음 나온 이 책은 전쟁 사진을 주로 분석함으로써 타인의 고통에반응하는 우리의 태도를 점검한다. 전쟁이야말로 가장 적나라한 고통의 현장이기 때문이다. 그는 사진으로 재현된 이미지와 실제 현실 사이에는 큰 거리가있음을 지적하면서, 세계를 거짓 이미지를 통해서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 보자고 강조한다.
이 책은 타인의 고통을 단지 1회성 뉴스로 '소비'할만큼 무뎌진 우리의 윤리적 감수성을 가시처럼 찌른다. "타인의 고통에 연민을보내는 것 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런 연민은 우리의 무능력과 무고함을 증명해 주는, 뻔뻔한 혹은 부적절한 반응일지도 모른다"고 질책한다. 그럼 어쩌란 말인가.
"고통을 받는 그들이 우리와 똑같은 지도 상에 존재하고있으며 우리의 특권이 그들의 고통과 연결돼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숙고해보는 것, 그래서 전쟁과 악랄한 정치에 둘러싸인 채 타인에게 연민만을 베풀기를 그만둔다는 것, 바로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과제이다." (154쪽)
이 책에는 9·11 테러 이후 테러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 조지 W 부시 미 행정부의 독선을 통렬하게 비판한 '다 같이 슬퍼하자, 그러나 다 같이 바보가 되지는 말자' 등 손택의 또 다른 글 네 편이 부록으로 실려 있다. 미국의 보수단체 '미국 대학이사·동창회협의회'가 '미국을 앞장서 비난하는 인사들' 중 한 명으로 그를 지목하게 만든 기고문들이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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