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년간 가정폭력에 시달리다 끝내 남편을 살해한 40대 아내와 희귀병을 앓다 식물인간 상태가 된 딸의 치료비를 마련하지 못해 인공호흡기의 전원을 뽑아 숨지게 한 아버지에게 살인죄를 저지른 피고인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집행유예형이 선고됐다.서울지법 서부지원 형사1부(부장판사 김남태)는 15일 상습적으로 폭력을 휘두른 남편을 흉기로 찔러 살해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노모(46)씨에 대해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인은 초범이고, 20여년간 남편의 잦은 폭행으로 한쪽 귀의 청력을 잃는 등 수많은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당해오면서도 꿋꿋이 가정을 지켜왔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이 사건도 남편이 먼저 술을 마시고 새벽녘에 피고인을 위협하는 과정에서 우발적으로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고 집행유예형 선고 이유를 밝혔다.
김 부장은 재판이 끝난 뒤 "생명이 끊어진 것에 대해 관대한 처분을 내리기는 어려웠으나 사회의 기본구조인 가정 역시 존중되고 사랑받아야 한다는 점을 고려했다"며 "피고인은 가해자이면서 동시에 피해자이고, 피고인의 딸들이 법정에서 진술한 가정폭력의 피해 등을 고려, 피고인을 유치장이 아닌 가정으로 돌려보내는 게 낫겠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정당방위 또는 야간, 기타 불안스러운 상태하에서 공포, 경악 등으로 인한 과잉방위에 해당돼 죄가 되지 않는다"는 노씨측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징역 12년을 구형한 검찰은 그러나 판결에 불복, 항소할 뜻을 밝혔다.
재판부는 또 이날 '경추탈골증후군'이라는 희귀병을 앓다 6년 전부터 식물인간 상태로 지내온 딸(당시 20살)의 인공호흡기 전원을 뽑아 숨지게 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전모(50)씨에 대해서도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가족의 수입으로 더 이상 거액의 치료비를 감당하지 못할 상황이었고 피해자 간병을 위해 다른 식구들의 정상적인 가정생활도 어려워져 가정불화가 잦아지자 범행한 것으로 보인다" 며 "피고인 역시 (딸을 죽인 한을) 가슴에 안고 살아가야 할 형편이고, 범행 경위나 범행 후 정황, 가족관계, 개전의 정 등을 참작해 이같이 판결한다"고 밝혔다.
/김명수기자 lece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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