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해 동안 가장 신선하면서도 나를 고민하게 만들었던 말이 바로 "쿨(cool)하게 산다"였다. "쿨하게 사는게 꿈이에요" "저의 이상형은 쿨한 사람이에요"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쿨하다는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곤 했다. 영어 사전을 찾아보면 '어떤 경우에도 냉정함과 자기 조절능력을 잃지 않는 것' '너무 열렬하거나 친근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 '감정의 기복을 절제하는 것'으로 나와 있다.그러나 좀더 유추 해석해 보면 쿨하게 산다는 것은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겠다는, 다시 말해 누군가에게 구속 당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다른 사람을 구속하지도 않겠다는 삶의 의지로 들린다. 그래서 혹자는 쿨한 삶을 우리가 흔히 쓰는 '포스트잇'에 비유하기도 한다. 어디에나 붙일 수 있고 필요한 곳으로 옮길 수도 있지만 그 어느 곳에도 고정되지 않고, 붙였다 떼어낸 자리에는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는 특성 때문이다. 정말 쿨하다는 말과 딱 떨어진다.
쿨하다는 것은 이 시대의 불안전성이 만든 슬픈 유행어다. 직장이나 학교나, 가족이나 가장 친밀한 연인 관계에서조차 영원한 것은 없다는, 그래서 적당한 거리만을 유지하고, 열정은 가질 필요가 없다는 현실의 반영이다. 불안한 사회에서 개인이 택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방법은 '심드렁하게 사는 것'이다. 나를 둘러싼 사회를 무관심하게 바라봄으로써 나를 지켜내는 것이다.
하지만 평범한 소시민인 내가 쿨하게 살고자 할 때 그것은 나에게 또 다른 구속으로 다가온다. 내가 하고 있는 직장 일에서 구속 받지 않으려면 진정한 프로이어야 한다. 가족이나 내가 맺고 있는 인간관계에서 쿨하기 위해서는, 연인 관계에서조차 쿨하기 위해서는 그들에게 의지하지 않을 정도로 나는 스스로 완벽하게 단련되어 있어야 한다. 그러한 삶의 여유를 갖기 위해서는 경제적인 뒷받침은 물론, 부단한 개인적인 노력이 수반돼야 한다.
쿨하게 산다는 것은 수퍼맨을 꿈꾸는 삶인지도 모른다. 나는 오늘도 쿨한 삶을 꿈꾼다. 그러기 위해서 밤을 세워 일을 하고서도 다음 날이면 편하게 일을 끝낸 것처럼 행동한다. 난 일에 대해 너무 많은 시간과 열정을 소비하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을까 염려한다. 이 때문에 사람들에게 의지하지 않고, 적당한 관계를 유지하며 감정을 조절하기 위해 혼자 울음을 삼켜야 할 때도 있다. 쿨한 삶은 우리에게 새로운 가치관을 요구하고 있다.
김 은 아 홍보대행사 미디컴 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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