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 전 장쩌민 총서기를 비롯한 중국수뇌부가 연달아 제주도를 방문해 유명관광지에 휘호를 남겼고, 그 여파인지 중국관광객이 계속 늘었다. 이 현상을 보고 베이징특파원을 지낸 후배 기자가 이런 말을 했다. "좋아할 일만도 아니죠. 중국인들은 제주도에 욕심이 생기면, 양쯔강에서 흘러나온 모래로 형성된 섬이니 자기네 땅이라고 우길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그 때 나는 "난센스" 라는 대꾸와 함께 웃고 말았지만, 요즘 그 기자의 '난센스'를 가끔 머리에 떠올리게 된다. 동북공정(東北工程)이라는 이름아래 고구려를 자기네 역사로 편입해 버리려는 중국의 태도에서 미래 한중관계의 한 단면을 예상해 보게 된다.
작년 세계는 이라크전쟁 등 소위 미국주도의 테러 예방전으로 소용돌이쳤다. 그러나 매우 조용하면서도 역동적인 변화를 주도해 나간 나라는 중국이었다. 정치적으로 4세대 지도체제가 안착했고, 경제는 8.5%나 성장했다. 유인우주선 발사를 성공시켰고, 6자 회담을 주선함으로써 국제외교무대에서 세련됨을 과시했다. 세계 제2 외환보유고와 구매력을 활용하여 미국을 능숙하게 다루기 시작했다. 중국은 이제 세계의 공장으로서만 만족하지 않고 자체 브랜드를 개발하고 나아가 세계 기술표준을 만들겠다는 야심을 보인다.
중국의 초고속성장은 전세계적으로 경제는 물론 정치 문화적인 파급효과를 낳고 있다. '중국 기회론'과 동시에 '중국 위협론'이 국제사회의 화제가 되고 있다. 황화론(黃禍論)의 본고장인 서양사회에서 중국 위협론은 보다 심각하게 거론되고 있는 것 같다.
중국이 세계의 공장으로 자리잡으면서 개도국과 선진국이 모두 산업공동화의 공포에 휩싸여 있다. 멕시코는 저가 중국공산품의 수입으로 '테킬라'(선인장 술)외엔 경쟁상품이 없다고 울상이다. 수세기 동안 명성을 떨치던 북부 이탈리아의 섬유업계가 중국 섬유산업의 공격을 받아 도산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미국도 경제적으로 중국특수를 누리고 있지만, 전략적으로 중국위협론을 강하게 느끼고 있다. 미국과의 마찰을 피하며 조용히 경제력을 키우는 중국이 언젠가 자기네 패권에 도전한다는 것을 미국은 걱정하고 있다. 미국이 유인우주선을 띄운 것은 40년 전이다. 그런데도 미국은 작년 중국의 유인우주선 발사에 상당한 충격을 받은 듯, 부시 대통령은 30년 안에 화성에 사람을 보내는 '우주로드맵'을 발표했다. 중국 위협론에서 나온 심리표출이 아닐까.
우리나라는 중국의 변화 앞에 가장 가까이 노출되어 있다. 국가안보에서 반찬거리와 숨쉬는 공기마저 중국의 영향아래 있다. 얻을 것도 많지만 위협받을 일도 있다. 고구려사 왜곡은 위협의 서곡일지 모른다. 중국은 국가의 분열요인 차단에 혈안이 되어 있으며, 그 핵심은 소수민족 정책이다. 동북공정이 바로 이런 중국의 고민과 연관이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렇다고 이웃나라 역사를 가져가는 것은 중국의 감춰진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중국위협론을 잠재우는 것이 현재 중국 지도부가 공들이는 중요한 과제이다. 중국의 동북공정은 국제적으로 중국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을 일으킬 것이다. 한중간에 고구려사 논쟁이 불거질수록 국제사회는 중국 위협론의 사례로 베이징을 경계할 것이다.
뉴욕타임스의 중국전문가 니컬러스 크리스토프는 중국위협론의 근거는 단순한 경제성장이 아니라 중국정부가 젊은이들에게 심어주는 민족주의 정서라고 지적한다. 그렇다면 동북공정을 받아들이는 중국인의 정서는 무엇일까.
우리를 둘러싼 동북아정세가 100년 전과 비슷하다고 한다. 후세사람들이 역사를 뒤돌아보면 너무나 쉽게 보이는 상황이었지만 당대 사람들은 혼란스러웠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정치 지도자는 이 변화의 메시지를 잘 읽어내어야 한다.
김 수 종 수석논설위원 sj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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