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10만원권 지폐 제작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역기능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새 것을 좋아하는 나는 하루라도 빨리 그걸 보고 싶고, 갖고 싶다. 세상엔 새 것이 넘치지만 나의 새 것은 없는 시대다. 악취를 풍기며 끝까지 버티고 있는 구시대의 정치판에 짜증내는 자신이 짜증스러운 시대다. 로또 빼고는 인생의 경제적 역전을 꿈꾸기 어려운 샐러리맨이나 서민들에게 잉크냄새 물씬 나는 새 10만원권 지폐 한 장은 한때나마 희망의 부적 같은 역할을 하지 않을까.생각해 보라. 은행에서 갓 바꿔온 빳빳한 10만원권 한 장을 출근하는 남편의 지갑에 넣어주며 "여보, 힘내"라며 오늘도 파이팅을 외치는 주부는 얼마나 설레일까. "내 기필코 10만원권 가득 찬 노란 봉투를 그대에게 선물하리라"며 골목을 나서는 남편은 또 얼마나 든든할까. 나는 내 지갑에 들어온 최초의 10만원권 지폐를 최소한 1년간은 쓰지 않고 간직하겠다. 행여 구겨질 새라 지난 연말 선물 받은 장지갑에 넣고 다니겠다. 현실이 너무 화나는 우리는 지금 새로운 꿈이나 비전이 필요한 게 아니라, 언젠가는 우리가 비슷한 꿈과 비전을 가질 수 있음을 생활 속에서 수시로 일깨울 수 있는 새로운 아이콘이 필요한지도 모른다.
나는 그 도안이 되도록 장쾌한 민족적 환타지를 품고 있으면 좋겠다. 중국이 엄청난 물량을 쏟아 부으며 고구려 역사를 자국의 변방사로 편입시키려 하고 있는 이 때, 앞면 모델은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國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 정도는 돼야 하지 않겠는가. 또한 뒷면은 말 타고 대륙을 질주하며 호랑이를 향해 활을 날리는 무용총 벽화가 어떨지. 이 땅을 지켜줄 네 마리의 신수(神獸)가 그려진 사신도는 어떨지.
세찬 공화국의 겨울 아침, 꿈을 꾼다. 아내가 바꿔온 빳빳한 10만원권 지폐 날에 손가락이 베이는 싸한 꿈을….
조 철 현 타이거픽쳐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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