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서암, 청화, 월하, 서옹, 덕암 스님 등 큰 스님들이 잇달아 타계, 불교계는 커다란 손실을 입었다. 이들은 해방 이후 한국 불교의 틀을 다진 1세대 선승들이었다. 이들의 뒤를 이어 선(禪)의 맥을 이어갈 차세대 선승들은 아직 일반인은 물론 불교 신자들 사이에도 그리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일평생 선방에서 수행 정진을 거듭해 온 차세대 선지식(善知識)들이 잇따라 나서서 대중들에게 선 수행을 지도하는 뜻 깊은 자리가 마련된다.
내달 15일부터 초파일까지 3개월 동안 일요일마다 서울 견지동 조계사에서 '한국불교의 전통선을 말한다'라는 주제로 열리는 '간화선(看話禪) 중흥을 위한 전국 선원장 초청대법회'이다. 조계종의 참선 수행 전문 기관인 전국의 선원(禪院)에서 선승들을 지도하고 있는 선원장과 이에 맞먹는 구참(久參) 수좌(首座) 스님 10여명이 재가신자와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갖는 법회다.
법회를 이끌 스님들은 경북 봉화 각화사 태백선원장 고우 스님, 봉화 축서사 주지 무여 스님, 법주사 선원장 함주 스님, 화엄사 선원장 현산 스님, 조계종 기초선원장 지환 스님, 전 기초선원장 영진 스님, 범어사 선원장 임각 스님, 제주 남국선원장 혜국 스님과 미국 버클리 육조사 주지를 지낸 현웅 스님, 쌍계사 금당선원 선덕 도현 스님 등이다. 조계사 측은 이들 외에 몇 명의 다른 선원장 스님들과도 섭외 중이다.
이들은 출가 이후 30∼40년간 오로지 선방에서 화두를 참구해 온 수행승들이다. 1세대 선승들이 개인적 수행력으로 선풍을 진작시켰다면 이들은 1950년대 정화 이후 나름대로 안정된 틀 안에서 공동체 생활을 하며 수행을 해왔다. 고우, 무여, 혜국 스님 등은 조계종이 지난해부터 편찬 준비를 해 온 '간화선 수행지침서' 편집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다.
선 수행의 현장에서 실참(實參), 실수(實修)하는 선승들이 이렇게 연이어 법회를 갖는 것은 조계종 최초의 일이이기도 하다. 이 스님들은 조계종 종단 정치 1번지인 총무원과 조계사 일대를 '가서는 안 될 곳'으로 여겨 기피해 왔다. 조계사 주지 지홍 스님은 "지난해 문제가 됐던 간화선 위기론을 정리하고 재가 신자들의 수행을 고취, 수행의 흐름을 만들어 보려고 법회를 마련했다"며 "평소 조계사와 총무원을 멀리해 온 수좌 스님들도 수행을 대중화한다는 취지에 공감해 참석키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스님들의 법문 주제는 '선의 본질과 의미' '화두 드는 법' '비우고 쉬는 공부가 선의 기본이다' '일체유심조' '선수행의 요체'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入處皆眞) 등이다. 법문이 끝난 후 질의 응답을 통한 수행 지도 시간도 마련한다. 조계종 포교원 박희승 차장은 "분규와 갈등의 현장이던 조계사 일대가 수행 중심지로 전환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면서 "앞으로 이런 흐름이 더욱 강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선승 1세대로는 조계종 종정 법전 스님, 봉은사 조실 석주 스님, 직지사 조실 관응 스님, 동화사 비로암의 범룡 스님 등 손꼽을 정도여서 지난해 큰 스님들의 입적으로 세대교체가 빠르게 이뤄지고 있다. 이번 법회는 차세대 선지식들이 대중에게 자연스럽게 얼굴을 알릴 수 있는 기회라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남경욱기자 kwn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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