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국회서 "실미도" 진상추궁… 난리났었죠"/ 8대 국회의원 역임 강근호 군산시장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국회서 "실미도" 진상추궁… 난리났었죠"/ 8대 국회의원 역임 강근호 군산시장

입력
2004.01.15 00:00
0 0

"실미도 사건이 일어난 당시는 군사정권의 서슬이 시퍼럴 때여서 군과 관련한 발언은 금기였어요. 그런 상황에서 대정부 질문을 통해 실미도 사건의 진상을 추궁하자 국회가 벌집 쑤신 듯 시끄러웠습니다." 영화 '실미도'가 개봉 19일 만에 관객 500만명을 돌파하는 등 극장가에서 돌풍을 일으키는 것을 바라보면서 강근호(70) 전북 군산시장은 남다른 감회에 젖는다. 8대 국회의원 시절 국회에서 실미도 사건의 실체를 공식적으로 첫 거론했고 그로 인해 정보기관에 끌려가 모진 고초를 당했던 기억 때문이다.실미도 사건이 일어난 1971년 37세의 젊은 나이에 야당인 신민당 후보(군산·옥구)로 출마해 당선된 그는 그 해 9월 정기국회 대정부질문에서 '8·23 난동 사건'으로 부르던 실미도 사건의 실체를 추궁했다. 독재정권이 강압적으로 통치하던 시절이라 40여명의 희생자를 낸 이 사건에 대해 국회의원 누구도 입에 올리기를 꺼리던 때였다.

초선의원으로 거칠 게 없던 그가 실미도 사건 주동자의 정체를 묻자 의사당에는 일순간 긴장감이 감돌았다. 이어 여당인 공화당 의원들이 고함을 지르면서 발언을 노골적으로 방해해 대정부 질문은 10여 차례나 중단됐다. 하지만 그 소란 속에서도 강 시장은 사건의 실체를 따져나갔다.

다음날 답변에 나선 김종필 당시 국무총리는 진상을 자세히 밝히지는 않았지만, 사건 주동자들이 특수부대 요원이었음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그 여파로 정래혁 당시 국방장관이 사임하고 오치성 당시 내무장관의 불신임안이 국회를 통과해 '10·2 국회 파동'을 불러왔다.

하지만 가장 큰 시련을 겪은 사람은 강 시장이었다. 이듬해 유신이 선포된 뒤 계엄군에 끌려가 정보기관에서 전기고문을 받다 실신, 하루 만에 깨어났으며 그 때의 후유증으로 한쪽 다리가 불편해져 지금도 지팡이에 몸을 의지하고 있다.

강 시장은 "실미도 사건의 진상을 밝히고 피해자에 대한 명예회복과 보상을 해야 한다"며 "짬을 내 실미도를 꼭 한번 둘러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8대 의원 이후 야인 생활을 하던 강 시장은 2001년 4월 재선거에서 무소속 후보로 나서 군산시장에 당선됐고 이듬해 지방선거에서 시장에 재선됐다. 강 시장은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및보상심의위원회의 심의를 통과해 2001년 8월 민주화 투쟁 유공자로 인정 받음으로써 명예를 되찾았다.

/군산=최수학기자 shchoi@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