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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북핵, 미국이 양보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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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북핵, 미국이 양보할 차례다

입력
2004.01.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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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들어서도 북핵 위기상황은 만만치 않을 조짐이다. 연말에 합의를 도출하기 위해 관련국들이 활발한 셔틀외교를 벌였지만 의견수렴에 이르지 못했다. 미국은 시종일관 북한의 핵포기를 요구하고 있고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핵폐기가 보장되어야 북한의 요구사항을 논의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에 반해 북한은 미국이 동시행동에 나서지 않으면 결단코 자신이 먼저 행동에 옮기지 않겠다는 입장이다.북핵사태의 본질을 들여다보면, 사실 단순한 문제를 놓고 기싸움을 벌이는 형국이다. 정작 북미 양국이 대립하고 있는 지점은 순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서로 상대방이 요구하는 내용을 잘 알고 있고 그것을 언젠가는 이행하겠다는 의지도 갖고 있다. 다만 그 행동의 선후(先後)와 관련해, 미국은 북한의 선조치를 요구하는 반면 북한은 미국과의 동시행동을 주장하면서 팽팽히 맞서는 것이다. 따라서 순서의 문제를 해결하기만 하면 일단 협상의 실마리는 제공된다.

북미 모두 극단적 파국을 원하지 않는다면 핵문제는 결국 '거래'일 수밖에 없다. 미국이 요구하는 핵포기를 북한은 결국 이행해야 하고 북한이 요구하는 체제보장을 미국은 제공해야 하기 때문이다. 시장에서 물건과 현금을 교환하는 것처럼 거래의 가장 일차적이고 확실한 방법이 맞교환이다. 이는 곧 북한이 원하는 동시행동의 방식이다.

그러나 이게 어렵다면 북한의 선행동을 요구하고 있는 미국을 만족시키는 방법도 존재한다. 맞교환이 아니라 신용거래 방식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용거래는 말 그대로 서로의 신용이 전제되지 않으면 불가능한 거래방식이다. 믿지 못하면서 어떻게 돈을 받지 않고 물건을 먼저 내줄 수 있겠는가. 북한이 일관되게 미국과의 동시행동에 집착하는 것도 바로 북미간 신뢰가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실 지난해 북한은 나름의 양보조치를 취했다. 북한이 금과옥조처럼 주장해왔던 북미간 양자대화도 결국은 3자회담과 6자회담 수용으로 포기한 셈이 되었고 일관되게 주장하던 불가침조약 요구도 미국의 서면 다자안전보장안을 수용함으로써 한발 물러선 게 사실이다. 북미 갈등의 쟁점이었던 대화형식에서 북한은 양자회담을 포기했고 협상내용에서도 일단 불가침조약 요구를 철회한 것이다.

협상의 형식과 내용에서 의미 있는 양보를 한 북한은 이제 미국이 동시행동 원칙만이라도 받아들이기를 원하고 있다. 더 나아가 북한은 2차 회담 성사를 위해 동시행동의 첫 단계만이라도 일단 합의하자는 안쓰러운 제의를 해놓은 상태다. 그러나 미국은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북한이 동시행동 원칙을 끝까지 고수하는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리비아처럼 북한도 먼저 핵포기 선언을 하고 실제 행동으로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겠지만, 문제는 그같은 외상거래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쌍방의 신뢰회복이 필요조건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북한이 포기할 수 없는 최소 요구가 바로 체제안전을 보장 받는 것인데, 차후에라도 미국이 이 요구를 수용할 것이라는 신뢰 없이 먼저 자신의 카드를 포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제 미국은 북한의 동시행동 요구에 답을 해야 한다. 일방적으로 북한의 선핵포기를 요구할 것이 아니라 북한이 먼저 행동에 나설 수 있도록 합당한 신뢰를 보여주어야 한다. 적어도 북한이 핵포기에 나섰을 때 미국도 북한에게 나름의 혜택을 제공할 것이라는 단단한 믿음을 심어줘야 한다. 아직도 핵문제를 협상과 거래가 아니라 상대방의 완전굴복이나 붕괴를 위한 수단으로 간주하고 있다면 그 자체로 신뢰회복은 불가능하다.

지금이라도 미국은 핵문제가 거래방식의 협상으로 해결되어야 함을 인정하고 북한이 믿고 먼저 행동에 나설 수 있도록 의미 있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김 근 식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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