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부품업체 M사의 영업담당 임원 김모(48)씨는 설을 앞두고 거래처에 선물을 보내는 문제 때문에 비상이 걸렸다. 전달이 편리한 선물권의 경우 대상자 명단을 작정해야 하기 때문에 사실상 보내기가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대신 규제가 상대적으로 적은 선물세트로 바꿔야 하는데, 선물을 고르고 우송할 인력이 부족해 울상이다.상품권 골프 대신 선물세트 술접대 늘어
14일 업계에 따르면 접대비를 50만원 이상 지출했을 경우 증빙서류를 갖추도록 한 국세청 지침이 시행되면서 기업의 접대 판도가 조금씩 바뀌고 있다. 당장 설 선물에 변화가 일고 있다. 롯데, 현대, 신세계 등 유통업체들에 따르면 설 선물로 상품권이나 50만원이 넘는 선물세트의 판매는 뚝 끊어진 반면, 30만∼40만원선인 곶감, 갈치, 대하세트 등의 매출이 최고 60% 이상 늘어나 '접대비 지침'의 위력을 실감케 하고 있다.
실제로 삼성 LG 현대차 포스코 등 대기업들은 최근 50만원 이상 접대비를 쓸 때 부서장의 승인을 받도록 공문을 배포했다. 또 접대형식도 향락 위주에서 공연초대 등으로 다양화해 5%대에 머물던 예술의전당 공연예매 법인고객 비중이 최근에는 25%까지 크게 늘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사회에 뿌리깊은 접대관행이 쉽게 바뀌기 어려운데다 현실적으로 국세청 지침을 준수하기 어려워 기업마다 곤혹스러워 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골프접대. 폭음을 기피하는 풍조가 확산되면서 접대 관행도 룸살롱에서 골프로 바뀌는 추세이지만, 이번 국세청 지침으로 된서리를 맞게 됐다. 한 대기업 홍보담당 임원은 "지난주 접대골프를 쳤는데, 라운딩 전에 접대상대에게 명단을 기록하겠다고 알리고 양해를 구할 수 밖에 없었다"며 "다행히 일행이 이해해줘 골프를 무사히 마쳤지만 분위기가 어색해지는 것을 피할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이 임원은 "4명 이상 어울려야 하는 골프의 경우 50만원 이하로 결제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나눠서 결제하는 편법은 적발 위험성이 커, 차라리 접대 상대에게 골프 비용을 미리 현금으로 나눠줄까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반면 술 접대의 경우 같은 대상에게 접대해도 1·2차가 별도의 접대로 인정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영수증 처리가 용이한 룸살롱 접대가 다시 늘어날 조짐이다. 실제로 일부 룸살롱들은 벌써 한 업소가 여러 개의 사업자등록을 해놓고 다른 상호로 나눠 결제해주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재계 "입증상한 100만원으로 확대"
재계는 기업들의 불만이 이어지자 상한액 인상 등 제도 완화를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대한상의는 "접대비 50만원은 사치·향락성 접대가 아닌 경우에도 인원 수에 따라 쉽게 초과할 수 있는 금액"이라며 "최소한 입증대상 금액이라도 50만원에서 100만원으로 현실화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그러나 참여연대 조세개혁센터장 최형태 회계사는 "재계의 반대는 그간 잘못된 관행을 고치려는 의지부족 때문이고 입증상한 50만원은 미국 등 선진국과 비교해 훨씬 많은 금액"이라며 "영업능력이 접대가 아니라 업무관련 실력으로 평가 받을 수 있어야 장기적으로 기업 경쟁력 강화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영오기자 young5@hk.co.kr
박일근기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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