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겨울 한반도 기온이 예년에 비해 평균 3∼4도 이상 높은 반면 시베리아 일대에는 혹한이 몰아치면서 철새들의 이동이 엉망진창이 돼버렸다. 시베리아에서 겨울을 나는 철새가 추위를 피해 우리나라로 날아들고, 가을에 떠나야 할 철새들은 한반도에 그대로 머무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14일 조류학자 등에 따르면 이달 초 전남 해남군 금호호 간척지에서 천연기념물 205호 노랑부리저어새 300마리 이상이 한꺼번에 발견됐다. 조류 전문가들은 겨울철 몽골지방에 주로 서식하는 노랑부리저어새가 대륙의 혹한을 피해 무리 지어 남하한 것으로 분석했다.
거꾸로 시화호에는 3월에나 볼 수 있었던 흑꼬리도요가 관찰돼 화제가 됐다. 흑꼬리도요는 열대지방에서 3월께 한반도로 북상, 여름철 비교적 서늘한 시베리아쪽을 향해 가는 철새. 평년과 비교하면 3개월 정도 속도위반을 하고 있는 셈.
가창오리는 천수만 일대에 서식하다 11월 말 따뜻한 전남 영암호로 둥지를 옮기지만 올해는 겨울 내내 꼼짝 않고 있다.
여름철새가 아예 한반도에서 겨울을 나는 최근 몇 년간의 현상은 올해 더욱 두드러진다. 낙동강 하구언이나 목포 지방 등에서 월동하는 제비가 상당수 관찰됐고, 한강 밤섬에도 왜가리가 겨울을 나고 있는 모습이 발견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흑산도 일대에는 필리핀이나 중국 남부 지역에서 서식하는 올빼미 일종인 그래스아울(grass owl)까지 발견됐다.
이한수 환경생태연구소장은 "남부지방을 중심으로 아직 한국학명도 없는 새가 관찰됐다는 보고가 잇따르고 있다"면서 "장기적으로는 철새의 개념 자체가 완전히 바뀔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국립중앙과학관 조류연구실 백운기 박사는 "올 겨울 유난히 기온이 높고, 눈이 적어 철새들을 우왕좌왕하게 만들고 있는 것은 사실" 이라며 "그러나 20∼30년간의 자료를 바탕으로 한 면밀한 조사 없이 철새의 이동경로가 바뀌었다고 단정짓는 것은 무리"라고 반박했다.
/정원수기자 nobelia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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