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갛게 물들인 머리에 껑충한 키, 그리고 중간중간 불쑥 꺼내는 유머까지 가수 김장훈(36)은 지난해 공연 연출 공부를 위해 미국으로 떠나기 전의 모습 그대로였다.그는 1일부터 KBS FM(89.1㎒) '김장훈의 뮤직쇼'(오후 2∼4시)의 DJ를 맡고 있다. 나른한 오후 청취자의 귀를 쫑긋하게 만드는 데 특유의 입담과 돌출 행동이 한 몫을 한다.
13일 KBS가 마련한 기자간담회 자리에서도 그는 입담을 과시했다. 라디오와 관련된 추억을 물었더니 "고등학교에서 '짤리고' 야인으로 살던 시절, 예일여고 앞 떡볶이집 DJ로 지낸 적이 있다"는 소개로 대신했다. "분식집 DJ였던 제가 어쩌다 KBS DJ까지 맡게 됐는지 신기할 정도예요. 그래도 그 때는 인기가 죽여줬죠." 그 당시 평생 잊지 못할 생일파티를 선사한 한 여고생과의 추억은 18일 방송되는 KBS1 'TV는 사랑을 싣고'에 소개된다.
워낙 솔직한 성격 탓에 진행도 파격이다. 방송을 맡은 지 얼마 안 돼서는 1980년대 히트곡 립스 잉크의 '펑키타운'이란 노래가 나가는 도중 'Won't you take me to Funky town'이란 후렴부를 '연탄불∼ 꺼∼져 번개탄'하고 따라 불러 화제가 됐다.
제작진도 김장훈의 돌출 행동이 싫지 않다는 분위기다. 김우석 PD는 "라디오는 진행자의 인간적인 면이 그대로 전달되는데 김장훈은 가식 없는 진행으로 청취자와 방송 사이의 벽을 허물어뜨린다"고 말한다. "처음 맡았을 때 KBS에 부탁을 했어요. 제발 '짜장면'을 자장면으로 강요하지만 말아 달라고요. '자장면'하면 얼마나 맛없어 보입니까?(하하!) 어느 정도는 트렌드를 반영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방송 이틀째 되는 날엔 탤런트 차태현이 전화로 "형, 거기 PD 선생님 양복 좀 맞춰야겠어요"라고 농담을 건넸다는 일화도 소개했다. 심의에 걸려 제작진이 방송위원회에 자주 들락거려야 할 것이란 얘기였다.
미국에서는 산타모니카 칼리지에서 공연연출을 배우며 9개월을 보냈다. 언제부턴가 노래가 메말라졌다는 느낌이 들어 "외로움의 끝까지 가보자, 바닥을 쳐야겠구나" 하고 떠난 유학길이었다. "미국인 친구집에 얹혀 살며 정말 아끼고 살았어요. 버스만 타고 다니고, 3달러50센트 하는 김밥 값을 아끼려고 밤 늦게 쉰내 나는 김밥을 샀죠." 우울증 증세로 병원에 갔을 정도로 외로웠다는 얘기도 담담하게 꺼냈다.
그렇게 배워 온 공연연출로 지난해 크리스마스 이브, 후배 가수 싸이의 '올나잇 스탠드' 공연을 연출했다. "결과는 괜찮았지만, 연출자로서 만족도는 20%"라는 자평이다. "정말 화끈한 '대자'(크기)로 내놓을 수도 있었지만, 훗날을 위해 '중자'로 만족한 것이 아쉬웠다"고 했다. 4월 8집 앨범을 내고 나면, 10개월 간 전국 투어 콘서트를 열 계획이며, 개폐식 돔 공연장을 짓고 싶다는 야심찬 포부도 갖고 있다.
/김영화기자 yaa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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