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년 1월15일 제5공화국의 집권당 민주정의당이 창당됐다. 기존 정치인 다수의 정치 활동을 규제한 채 신군부의 우두머리 전두환을 총재로 해 만들어진 민정당은 그 중요 구성원 가운데 육사 출신과 서울 법대 출신이 많다고 해서 육법당(陸法黨)으로 불리기도 했다.정당의 이름이 반드시 그 정당이 추구하는 가치와 맞아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미국 공화당이 실속 있는 공화주의를 실현해 오지 않았듯, 지금의 영국 노동당도 노동자들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1979년 12월의 군사반란과 이듬해 5월의 민간인 대량 학살을 기초로 만들어진 정당이 민주정의당이라는 이름을 내건 것은 우리 현대사의 한 희극적 에피소드를 넘어서 한국어에 대한 모독이라고까지 할 만했다. 민주정의당이라는 이름은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년'에서 오세아니아 사람들의 언어 생활에 스며든 '더블스피크'(표리가 다른 이중언어)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민주정의당의 '민주'가 실제로 뜻하는 것은 독재나 파시즘이었고, '정의'의 실제 의미는 불의였던 것이다. 민정당이 한국을 지배하고 있던 시절과 시간적 배경이 우연히 같은 소설 '1984년' 속의 세계에서, 강제노동수용소는 쾌락수용소로 불리고, 전쟁성은 평화성으로 불리며, 고문을 전담하는 수사 기구는 애정성으로 불린다.
민정당은 제5공화국 내내 과반 의석으로 국회를 지배하며, 전두환의 유사 파쇼 정부에 의회주의의 너울을 씌워주었다. 1987년 6월항쟁의 결과로 이듬해 출범한 제6공화국의 첫 총선에서 민정당이 과반 의석 획득에 실패하자, 민정당의 새 총재 노태우는 1990년 초 통일민주당 총재 김영삼, 신민주공화당 총재 김종필과의 합의로 세 당을 합쳐 민주자유당을 만들었다. 민자당은 김영삼 정부 시절의 신한국당을 거쳐 그 뒤 한나라당으로 이어지고 있다.
고종석
/논설위원 aromachi@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