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동 '그림마당 민'의 복원을 첫 과제로 삼겠습니다. 진정한 대안 공간을 마련해 보다 두터운 우리 미술문화층을 형성해 나가야 합니다."화가 여운(57·한양여대 일러스트레이션과 교수) 민족미술협의회 신임 회장은 "상업화랑, 재벌이 운영하는 미술관 외에는 제대로 된 전시공간이 없는 우리 미술계의 현실은 비극적"이라고 말했다. 여 회장은 올해로 창립 20주년을 맞는 민미협 최초의 직선 회장이다. 추대 형식으로 대표를 세워온 민미협에서 그는 지난해 12월 처음으로 회원들의 직접선거에 의해 회장으로 선출됐다. 그만큼 새로운 민미협에 대한 포부가 남다르다.
"민미협은 재도약해야 합니다. 1980년대 민미협의 민주화를 위한 노력, 민족민중미술의 기초를 닦은 공로는 인정해야 합니다. 하지만 90년대 이후 국내 정치 상황의 변화, 세계화 바람 등 환경의 변화와 그에 따른 회원들의 근본적 가치관과 미학, 정체성의 붕괴로 민미협은 무력화한 게 사실입니다." 여 회장은 이런 상황의 변화를 수용하면서도 아직 민미협은 할 일이 많다고 강조했다. "삶에 대한 역사적 인식을 바탕으로 서구에 짓눌리고 있는 아시아적 정체성의 재확인·객관화, 환경 문제 등 민미협의 역할은 더욱 커지고 다양해졌습니다. 한국에서는 민중미술에 대한 본격적인 학계의 연구가 없지만 미국과 유럽에서는 거기 대한 석, 박사 논문이 나오고 있다는 건 아이러니 아닙니까."
인사동에서 민족·민중미술 작가들의 전시공간이자 사랑방 구실을 하다가 10여 년 전 문을 닫고 지금은 가라오케로 변해버린 전시장 '그림마당 민'의 복원은 그 기초가 될 만한 일이다. "작고한 판화가 오윤을 비롯해 서예가 장일순, 대표적 민중미술 작가 신학철의 개인전 개최는 물론 민족문학작가회의 사무실 마련을 돕기 위한 여러 차례의 기금 모금전과 아시아권 작가들의 작품전을 열었던 '그림마당 민'은 한국 민중미술역사의 현장이기도 했습니다."
여 회장은 5억∼10억원이 들어갈 이 전시공간의 복원은 문화관광부의 적극적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현재 민미협 회원은 600여 명 정도. 전국 시·도에 지부가 있지만 회원이 1,200∼1,300여 명에 이른 과거에 비하면 많이 줄었다. 여 회장은 회원들이 내는 회비로는 불가능한 민미협 재정 문제 해결을 위해 발벗고 뛰겠다고 다짐했다.
74년 김윤수(현 국립현대미술관장), 신학철, 오윤, 김용태, 주재환, 김인순, 민정기씨 등과 민미협을 발족한 창립 멤버인 그는 미술계뿐 아니라 문화계의 마당발이다. 스스로 약간 모자란다며 붙인 별명 '여모'에, 자칭타칭 '전푼련'(전국푼수연합회) 회장이기도 하다. "시인 신경림 선배가 고문이고 내가 회장 아니오?" 미술인들뿐 아니라 고은 신경림 황석영 이성부씨 등 문인들과의 친분도 각별하다. 홍익대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1970년 한국일보가 주최한 제1회 한국미술대상전 공모 부문에서 우수상을 받고 화단에 나왔다(초대 부문 대상은 수화 김환기 화백). 89년까지 네 차례 개인전을 열었고 이후 한동안 작품전을 열지 못해 스스로를 '잊혀진 화가'라고 부른다. 요즘도 인사동 주점 서너 곳을 뒤져보면 반드시 선후배 화가, 문인들과 어울려 거나하게 마시며 "영혼의 예술"을 소리 높여 외치는 그의 모습을 찾을 수 있을 정도의 주당이기도 하다.
"미술은 다시 시대의 요구에 부응해야 합니다. '그림마당 민'의 복원을 숙원사업으로, 동북아 지역 작가들의 '아시아의 지금' 전, 어려운 북한 미술인들을 돕기 위한 기금 모금전과 함께 남북한 작가들이 제주도부터 백두산까지 우리의 산하를 새로 그린 작품들을 한 자리에 모으는 전시회 구상도 갖고 있습니다."
/하종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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