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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窓]"착한 여자"라는 굴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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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窓]"착한 여자"라는 굴레

입력
2004.01.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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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일본 사무라이 영화를 관람했다.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등장인물은 비중이 큰 역할을 맡은 일본 귀족 부인이었다. 예쁜데다 마음씨까지 착하고 조용한 성격의 그녀는 자기 남편을 죽인 서양 남자를 이해하고 심지어 사랑하게 된다. 영화를 보면서 서양 사람들이 일본 여자들을 얼마나 바보로 생각하는지 잘 알 수 있었다.뿐만 아니다. 요즘 조그만 반지 한 개를 둘러싼 모험을 그린 영화가 인기를 끌고 있다. 이 영화에 나오는 여신(女神)들은 모두 예쁘고 늘씬하며 착하다. 흰 베일을 쓰고 있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유년시절 영화만 본다고 엄마에게 혼나고 시달린 경험을 가진 일부 영화 감독들이 꿈꾸는 이상형은 이런 여신이거나 천사인 모양이다. 그런데 불행히 여신도 아니고 천사도 아닌 보통 여자들은 이런 영화들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사실 '천사표' 여성을 줄기차게 강조하는 이런 영화나 드라마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어린 심청이는 늙은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목숨을 바치기로 하였고, 춘향이는 기약 없는 낭군을 위해 참혹한 고문을 견뎌야 했다. 근래에도 많은 딸들이 오직 여자라는 이유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오빠와 동생을 위해 양보하고 참아야 하는 습관을 강요 받았던 것이 사실이다.

남북이산 가족 상봉 때마다 한국전쟁 후 50여년을 수절했다는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도대체 우리 사회에서 착한 여자가 되기 위해서는 얼마나 험한 자기희생의 길을 걸어야 하는 것일까. 어디 그 뿐이랴. 사춘기 소년으로 개발 시대를 보낸 우리 세대는 남동생과 오빠를 공부시키기 위해 방직공장에서 청춘을 바친 농촌 처녀들의 이야기를 기억한다.

이러한 희생은 지금도 남아 있다. 얼마 전에는 보험금을 타서 가족을 빚으로부터 구하기 위해 남편에게 자기를 교통사고로 위장하여 살해해 달라고 하였다는 주부의 이야기가 보도되지 않았는가. 보도된 대로 그 집안의 가난이 남편의 사업 실패 탓이라면 응당 남편이 자신을 희생하겠다는 제의를 했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아무 죄 없는 아내가 가족을 위해 생목숨을 끊게 되다니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어린 자녀를 두고 먼저 가는 엄마의 마음은 얼마나 참혹했으랴. 오늘도 이런 부인들의 마음을 모르고 살아가는 이 땅의 남편들은 고인의 희생 앞에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 나라에서 착한 여자의 길을 가는 것은 아직도 숙명 같은 것일까?

김 형 진 국제법률경영대학원대학교 교수·미국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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