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익(66)씨는 동아일보 기자를 지냈으며 계간 '문학과지성' 편집동인으로 활동했고, 문학과지성사를 창립해 대표이사를 맡았다가 퇴임했다. 기자였고 편집자였으며 평론가다. 글을 업으로 삼되, 쓰고 만진 글은 모두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었다.김병익씨가 '글 뒤에 숨은 글'(문학동네 발행)을 냈다. 출간을 맞아 경기 일산에서 만난 그는 "평범한 지식인의 생애를 돌아본 글모음"이라고 말했다. '스스로를 향한 단상'이란 에두른 부제를 단 책은 자서전이다.
지나온 삶을 거슬러 올라가, 3남2녀의 막내로 형의 교과서와 소설, 잡지 '학원' 등을 통해 풍요로운 독서체험을 쌓은 유년 시절과 기독교와 실존주의 사이에서 고통스럽게 번민한 20대의 내밀한 개인적 고백부터 담았다.
초등학교 1학년 때 광복을 맞아 모국어로 공부할 수 있는 '행운의 첫 한글 세대'가 됐다. 초등학교 6학년 때 한국전쟁을 겪었지만 직접적인 전쟁 피해는 면할 수 있었다. 대학 4학년 때 4·19를 거치며 자유민주주의의 세례를 받았다.
문학이 주류였던 시대에 '문지4K'(김현 김치수 김주연 김병익)로 한국 현대문학의 축이 된 잡지 '문학과지성'을 창간했다. 유신시절 정부조치로 신문사에서 강제해직된 뒤 문학과지성사를 세웠다. 검열과 판금이 성행하던 암울한 시대에 민감한 책을 맡아 펴냈고, 신군부의 억압으로 '문학과지성'이 폐간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1980대의 민주화 운동을 '보다 위의 세대'로서 겪고 볼 수 있었고,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는 기쁨도 누렸다.
개인의 이야기를 쓰는 게 곧 역사를 쓰는 것이었던 굴곡진 시대를 살아왔지만 그의 마음은 까칠까칠하지 않았다. 문학 담당 기자 시절 황동규 시인과 평론가 고(故)김현 등으로부터 배웠고, 진보적 운동가들의 이론에 귀를 기울였으며, 1990년대 이후 젊은 문인들의 새로운 글쓰기에 관심을 가졌다. 스스로는 "앞 세대의 것을 받아들이고 뒤 세대의 것을 배웠다. 기구한 현대사를 두루 겪으면서도 앞뒤 세대 모두에 열려 있었던 '행운아'였다"고 밝힌다.
기자였던 1970년대 초 그는 '왜 자서전을 못 쓰는가'라는 칼럼을 쓴 적이 있다. 그때 그는 우리 근대사가 일제 식민지와 한국전쟁을 겪으며 친일과 부역에서 자유롭지 못했음을 짚었다. "투명하지 못한 역사의 짐을 진 사람들이니 자서전을 쓰기 어렵다"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곧 이어 소설가 이청준씨가 '자서전들 쓰십시다'라는 작품을 썼다. 내 칼럼에서 모티프를 얻었을 것"이라며 그는 웃었다.
"생애의 반이 문학과지성사와 연결돼 있다"는 그가 굳이 다른 출판사에서 자서전을 낸 게 무엇보다 궁금했다. "2년 전쯤 원고를 문지에 줬다가, 조판된 것을 되찾아왔다. 부끄러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런데 지난 여름 소설가 신경숙씨를 만난 자리에서 이 원고 얘기가 나왔고, 나와 거리를 두고 있는 출판사에서 낸다면 나의 계면쩍음을 좀 덜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털어 놨다." 이 얘기를 전해들은 평론가 남진우씨의 주선으로, 그의 자서전은 문학동네에서 나오게 됐다.
책을 펼쳐 마지막 문구인 '세상이여, 반갑다, 사람들이여, 고맙다'를 짚어 읽으면서 그는 "이것이 나의 삶"이라고 했다. 배움을 통해 스스로를 끌어왔으며 한 생애를 따뜻하게 보낼 수 있었다고 말하는 그이다. 이 책은 그를 가르쳐준 세상과 사람에 대한 '수줍은 고백'이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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