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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지역주의 극복의지 있나

입력
2004.01.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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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7대 총선을 앞두고 최근 각 언론사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국민이 원하는 것은 정치자금의 투명성과 인적 쇄신으로 요약된다. 그러나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이번 총선의 과제는 지역할거구도의 극복이다.지역주의를 완화할 수 있는 방안으로 선거제도 개혁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현자 솔론에게 "최상의 헌법이란 어떤 것입니까?"라고 묻자, 그는 "어떤 국민이 어느 시대에 쓸 것인지를 먼저 말하라"고 대답했다. 비단 헌법에만 적용되는 얘기는 아닐 것이다. 선거제도 역시 유권자의 의식과 관행을 반영하는 역사적 산물이다. 그러나 동시에 선거제도 자체가 유권자의 행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우리 국회는 정파간의 당리당략과 이해상충으로 총선을 치를 '게임의 룰'도 정하지 못하고 있다. 이 같은 파행을 우려했기 때문에 국회 정치개혁특위의 자문기구로 범국민정치개혁협의회가 설치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범개협의 제안을 수용하겠다던 애초 약속과는 달리, 정치권은 지역구 의원 축소(199명), 비례대표 대폭 증원(100명)을 골자로 한 선거제도 개혁안에 대해 '현실을 무시한' 제안으로 폄하하고 외면했다. 그들이 입버릇처럼 내세웠던 '지역주의 타파'는 그들만의 '기득권 지키기' 앞에선 허울 좋은 레토릭에 불과했다.

그러나 아직 시간은 남아 있다. 부끄러운 과거사지만, 2000년 16대 총선에서도 선거법 개정안은 선거를 2개월 정도 남겨둔 시점에서야 통과됐다. 지역주의 투표행태를 완화할 수 있는 방안으로 범개협이 제안한 1인 2표제를 기초로 소선거구 다수대표제와 정당명부식 비례제를 혼합한 선거체제가 새로운 논의의 준거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혼합형 선거체제를 채택하고 있는 일본의 경우, 지역대표와 비례대표간의 비율이 5 대 3이고, 독일은 1 대 1이다. 물론 두 나라는 정치가 의회 중심인 내각제 국가이다. 다시 말해, 한국은 이들에 비해 정당이 매우 유동적이고 제도화 수준도 낮다. 이러한 이유로 범개협이 제안한 비례대표 증원(지역대표의 50%)이 시기상조라는 관측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비례대표제의 강화가 적어도 현재의 지역구도 완화 및 비례성 확보에 기여하리라는 점이다. 또한 정당투표의 확대 실시는 장기적으로 유권자와 정당간의 일체감을 증진시키고 정당의 제도화를 촉진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이다.

문제는 정치권에 개혁의 의지가 있는가 하는 점이다. 새로 구성된 정개특위 역시 정략적 접근이라는 구태를 벗어나지 못할 공산이 크다. 따라서 현 상황에서 가장 확실한 대안은 이 문제를 민간 인사가 주축이 되는 선거구획정위원회에 일임하는 것이다.

선거제도 개혁과 더불어 필히 수반되어야 할 것은 국민의 각성이다. 포스트 양김(兩金) 시대에 지역구도가 해소될 것이라는 전망은 아직은 희망일 뿐이다. 선거가 가까워질수록 지역주의의 망령은 여러 형태로 우리에게 다가설 것이다. 새해 첫날 김대중 전대통령 자택이 정치인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니, 결코 좋은 조짐은 아니다. 오는 4·15 총선에서 국민이 정치인 '그들만의 게임'에 또 다시 휘말린다면, 우리 정치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스스로 무산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역사로부터 배우지 못하는 국민은 역사의 보복을 받을 수 있다"는 경구를 되새겨 볼 시점이다.

이 충 묵 한국학술연구원 부원장·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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