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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지자체가 대안 사교육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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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지자체가 대안 사교육을

입력
2004.01.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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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재훈이가 다니고 있는 학교는 서울 봉천동 언덕배기에 위치한 평범한 학교이다. 봉천동 달동네가 생기기 시작한 1967년에 개교를 했으니, 말하자면 이 지역 사람들의 삶의 애환을 말없이 지켜온 지역의 산 증인인 셈이다.재훈이는 자기반 37명 가운데 방과 후 학원을 다니지 않는 7명 중의 하나이다. 그 아이는 학교와 담임선생님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수업시간에 딴 짓도 많이 하는 편이지만 학과 설명은 그래도 흘리지 않고 듣고 있는 모양이다.

초등학생들의 사교육비가 연 평균 250만원 정도라는 통계도 있지만, 사실 나의 경우 경제적 이유 때문에 학원에 보내지 않는 것은 아니다. 소위 보습학원이라고 하는 곳이 어떻게 아이들의 학습생명력을 서서히 마비시켜가는지를 잘 알기 때문이다.

학원 등 사교육의 문제는 그것이 한 학기씩 혹은 몇 달씩 학교 진도를 앞질러 가르치는 이른바 선행학습에 주력하는 데 있다. 선행학습에 익숙해진 아이들은 그것을 중단할 경우 학업성취도가 급격히 떨어지는 증후군에 시달리게 된다. 결국 학교를 앞질러가는 선행학습은 아이들에게는 아편과 같은 것이어서 일종의 중독성을 가지는 것이다.

나는 내 아들을 사랑한다. 그리고 한 사람의 교육학자로서 나의 아들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바로 학습생명력이라고 믿는다. 인공호흡기를 끼고는 절대로 마라톤을 뛸 수 없다. 학습은 인생에 있어서의 지적 호흡과 같은 것이며, 학습생명력은 스스로 지적 호흡을 할 수 있는 능력이다. 나는 이 능력을 나의 아들에게 주고 싶다.

이러한 나의 생각에 '원칙적으로' 동의하더라도 강남이 아닌 봉천동의 보통 학교에서, 그것도 사교육 없이 아이를 기르는 부모들은 지속적으로 불안감에 휩싸이게 된다. 게다가 아이가 60점짜리 시험지를 들고 오는 날에는 머리 속이 하얗게 된다. 어쩔 도리 없이 사교육의 흐름 위에 얹히게 되지만, 이들도 한결같이 말한다. "이 쳇바퀴에서 과감히 뛰어 내리고 싶어요."

선행학습이 아닌 보충학습은 필요하다. 학교는 전지전능한 신이 아니며, 학교가 못 다한 부분을 메워주는 보충교육은 때에 따라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이 꼭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학원일 필요는 없다.

최근 학교교육에 대한 대안학교(특성화학교)가 나타난 것처럼, 나는 사교육에 대해서도 대안적 사교육이 필요하다고 믿는다. 대안 사교육이란 아이들에게 부족한 학업성취를 상업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지역의 학교, 부모, 그리고 지역 공동체가 책임지는 것이다.

방학동안 재훈이는 어느 교회에서 운영하는 공부방에 다닌다. 이들은 학원에 다니지 않는 아이들에게 학업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역할을 한다. 때로 이들은 아이들의 굶주린 배까지 채워줘야 한다. 집에 돌아가면 밥이 없는 아이들을 위해 도시락을 싸서 집으로 돌려보내야 하는 곳들도 많다.

이제 이 짐을 학교와 지자체가 나누어 맡아야 한다. 사교육 문제를 지역 혁신의 차원에서 해결하는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초등학교는 오후 3시만 되면 텅 빈 공간이 되고 만다. 이후의 공간을 학부모와 지역 공동체가 넘겨받아 아이들 보충학습의 공간으로 키우자. 지역이 나서서 학교에 투자하고 아이들의 보충학습 기회를 제공하자.

물론, 기존의 교사들에게 이 짐을 모두 떠넘길 수는 없다. 예컨대 싱가포르에서 실시한 1기관 2시스템 제도처럼, 학교의 개념을 둘로 나누어, 일과 중에는 학교로서의 기능을, 그리고 일과 후에는 지자체가 책임지는 지역학습센터로서의 기능을 부여하자. 그리하여 학교가 아이들의 공부뿐만 아니라 부모들이 모여 아이들의 공부에 관해 함께 노력하고, 스스로의 배움을 위해 평생학습 기회로 삼는 지역 중심이 되도록 하자. 이것이 사교육을 '공교육화'하는 첫 걸음일 뿐더러 학교개혁의 시작이기도 하다.

한 숭 희 서울대 교육학과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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