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나 치과의사, 한의사 등 이른바 국가의 자격증을 가진 사람이 아닌 이들이 병자를 치료하는 행위를 법은 금지한다. 만일 법을 어긴 사람이 검찰에 의해 기소되면 판사는 법률에 근거하여 합당한 처벌을 내려야 한다.그런데 오히려 법이 잘못되었다며 자격증이 없는 이들에게 단결하여 이 법을 고치라고 '선동'하는 판사가 있다. 부산지법 민사7부 황종국(51) 부장판사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
그는 1992년 의사자격증 없이 병자를 치료한 이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한 데 이어 1994년에는 의사, 한의사 등 자격증을 가진 이들만이 치료를 하게 만든 의료법 조항이 잘못되었다며 위헌법률재판신청을 하기까지 했다. 96년 헌법재판소는 문제의 의료법 조항이 합헌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사법체계 내에서의 운동에 한계를 느낀 그는 민간의료인들에게 "잘못된 법규정을 고치는 일에 적극 나서라"는 주문을 하고 있다. 강연과 기고를 통해 이 같은 주문을 하던 그는 여론에 호소하기 위해 얼마 전부터 책을 쓰고 있다. '의사가 못 고치는 환자는 어떻게 하나'라는 제목으로 집필중인 이 원고는 의사 자격증이 없어서 합법적인 치료를 하지 못하는 민간의료의 '명의'(名醫)들과 그들의 진료 활동을 소개하고 이들의 진료 활동 자체를 원천적으로 거부하는 법 체계에 근본적인 의문을 던지고 있다.
왜 판사는 법을 바꿔야 한다고 나서게 되었을까. 그는 "'뇌내혁명'이란 책을 쓴 일본 의사 하루야마 시게오는 병원에서 의사가 고칠 수 있는 질병은 전체 질병의 20%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고 고백했다. 병원이 포기한 환자들은 병원 밖에서 치료방법을 찾는다. 이 때문에 민간에는 다양한 의료기술이 자생하고 번성한다. 이것이 현실이라면 국가는 민간의료를 금지하기만 할 것이 아니라 그 유용성을 취하고 육성하는 제도를 마련해야 하는데 금지시키기만 하니 병을 잘 고치는 사람은 세상에 나오려 하지 않는다. 이렇게 잘못된 의료정책과 법제도는 누구든 발벗고 나서서 고쳐야 한다"고 말한다.
그가 민간의료를 지원하게 된 데는 체험이 한 몫을 했다. 1982년 그는 사법고시를 준비하면서 지병인 비후성 비염을 민간의료로 고쳤다. 77년에 두 차례나 수술을 받았지만 계속 병이 재발하였고 유명한 이비인후과 의원에서 "코 속의 살점을 너무 많이 떼낸 수술 때문에 콧구멍이 넓어졌다. 완치는 불가능하다"는 진단을 받았던 병이었다. 당시 김수웅씨라는 재야명의는 단식과 귀 뒤의 쑥뜸을 통해 비염을 완치시켰다. 그는 반신불수의 할머니가 단식을 통해 걸어나가고 천식환자가 완쾌되는 모습도 목격했다. "우리가 몰랐던 경이로운 세계가 있다는 걸 발견했다."
1992년 그가 부산 지법에서 영장 담당 판사로 일하고 있을 때 그는 무면허 침구사를 구속시키려는 영장을 심사하게 됐다. 이 침구사는 비록 자격증은 없었지만 1만3,000명을 치료한 재야 명의였다. 의료법은 "의료인이 아니면 누구든지 의료행위를 할 수 없으며 의료인도 면허된 이외의 의료행위를 할 수 없다"(25조 1항)고 규정하고 이를 어기면 "5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66조)고 되어 있다. 그런데도 그는 영장을 기각했다.
"의과대학을 졸업한 의사가 아니면 의료행위를 무조건 못하게 하고 처벌하는 것은 생명과 신체의 구호를 바라는 환자의 입장에서 볼 때 인간존엄성과 생명권, 건강권 행복추구권 등 헌법이 지향하는 근본이념에 대한 위협으로 되어 위헌의 문제까지 제기될 수 있고 의술의 발전도 가로막는 것이므로 법의 운용과정에서 처벌의 범위와 정도를 될 수 있는 한 줄이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 이유였다.
94년 위헌법률재판신청을 하게 된 것은 형사재판부 소속으로서 다른 재야 명의 기소사건을 다루면서이다. 당시 피고는 단식을 통해 1만 5,000여명을 고친 이로서 그가 사건내용을 훑어보니 피고가 시술한 내용은 바로 그가 콧병을 고치며 체험한 방식이었다. 그는 법규 자체를 고치지 않고서는 억울한 죄인만 양산할 뿐 아니라 환자들이 제대로 치료받을 수 있는 권리조차 박탈되고 있다는 생각에 위헌제청을 했다.
그가 기고와 강연으로 본격적으로 법률 개정운동에 나서게 된 것은 99년 침구사 구당 김남수(89)옹에게서 침뜸을 배우면서부터이다. 김옹은 국가가 1962년 의료법 제정으로 침구사나 한의사 자격증을 가진 사람만이 침을 놓을 수 있게 만들어놓고는 한의사 시험은 치르되 침구사 시험은 단 한 회도 치르지 않아 침구사 제도를 유명무실하게 만든 현실을 안타까워하면서 '뜸사랑'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침과 뜸을 보급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80대의 나이에 30대처럼 정력적으로 활동하면서 인술을 펴는 이를 보며 법조인으로서 전통의학을 살리는 길에 나서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황씨는 2000년 5월, 녹색평론에 '민간의술의 유용성과 과학적 검증문제'라는 글을 써서 이 같은 문제를 본격 제기했다. 이후 그는 대학과 사회단체 등에서 연 6∼7회 강연을 하면서 민간의료를 합법화하기 위한 '투쟁 방식'까지 조언한다.
그는 법 개정을 위해 민간의료인들에게는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이나 헌법소원을 신청하라고 제안한다. 무면허의료행위 금지조항은 민간의료인에게는 "뛰어난 의료기술을 갖고 있는데도 의료법이 막고 있어서 헌법상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이며 환자들에게는 "유능한 민간의료인으로부터 치료를 받아 병을 고칠 수 있는데도 국가가 못하게 하는 바람에 생명권 건강권 행복추구권 등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헌법재판관 9인 중 6인이 위헌이라는 데 찬성하면 의료법은 위헌이라고 결정이 난다. 6명만 설득하면 되는 일이기에 가장 효율적이다"고 이 같은 제안의 배경을 풀이한다.
그는 2002년 2월부터 부산지법 의료사건 전담재판부 재판장을 맡고 있다. 의료사건을 좀더 잘 이해하기 위해 배석 판사들과 더불어 부산대 병원에서 수술현장을 직접 참관하기도 했다. "의과대학 6년과 인턴 레지던트 4년을 거친 끝에 그처럼 오랜 시간 서서 고도의 기술을 발휘해야 하는 정교한 작업(수술)이 불과 의보수가 1천 몇백원으로 환산된다는 현실은 무척이나 안타깝더라"는 황 판사는 "그러나 그것이 현재의 의료체계를 합리화시켜주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의료사건을 전담하면서 그는 서양의학의 한계를 더욱 뼈저리게 느낀다고 말했다. "민간의료인들에게 진료행위를 금지하는 것은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병원에서 발생하는 희한한 의료사고가 더 많다.
감기로 주사 한 대 맞고 출근하겠다는 사람이 주사 맞고 사망하거나 유방암 검진을 받고 유방 절제를 했으나 암세포가 전혀 발견되지 않은 사건, 중이염 수술이 잘못되어 뇌막염으로 번진 사례 등등 이루 셀 수 없을 정도"라는 그는 "서양의학은 고가의 의료장비와 비싼 약품을 필요로 하므로 비용이 비쌀 뿐 아니라 증세만을 치료하려 하고 약물에 의존하다보니 부작용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균형있는 의료 발전을 위해서도 민간의료의 합법화는 필수적"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민간의료의 합법화를 통해 치료효능이 뛰어난 민간의술에 의하여 병을 고칠 수 있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탁월한 민간의술의 교육과 계승이 가능하며 의료비를 절감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침뜸이나 부항, 단식 같은 방법들이 모두 큰 돈이 들지 않는다. 배우는 방법도 간단하다"고 말하는 그는 "이 같은 민간의료를 국가가 체계적으로 연구할 뿐 아니라 고등학교 과정에 몇 시간만 가르쳐도 전국민의 의료비가 엄청나게 절감될 것"이라고 제시한다. 그부터도 82년이래 병원을 가본 적이 없다고 한다. 그렇게 아껴지는 의료비로 의사에게는 제대로 된 의보수가를 줄 수 있을 뿐 아니라 생산적인 경제활동이나 복지에 투자할 수 도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의료법이 '외국의 의료인의 면허를 소지한 자로서 일정한 기간 국내에 체류한 자'에게는 의료행위를 허용함으로써 국내 민간의료의 질이 더 뛰어난데도 중국이나 미국에서 침구사 자격증을 따서 들어오는 경우도 생겨난다. 그는 "가뜩이나 장비와 의약품 수입구조로 외국 의존적이 되어 있는 의학을 전통의학 분야에서도 사대주의적으로 만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국부의 유출을 막기 위해서도 민간의료의 합법화는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서화숙 편집위원 hssuh@hk.co.kr
● 의료법 위헌 신청
1994년 황종국 판사의 위헌법률재판신청 이래 의료법 25조에 대한 위헌 신청은 4건이 된다.
황 판사의 신청에 의료법 관련 조항 합헌 결정이 난 데 이어 1건이 기각됐고 2건이 심리중이다.
침술원을 개원하려던 권모씨가 2001년 보건복지부 장관으로부터 '의료인이 아닌 자의 침구시술은 무면허 행위이므로 안된다'는 회신을 받은 후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이 청구는 "의료인이 아닌 자의 의료행위를 전면적으로 금지한 것은 매우 중대한 헌법적 법익인 국민의 생명권과 건강권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취지로 2002년 기각됐다.
미국에서 카이로프랙틱 의사 면허를 따고 국내서 시술하던 송모씨가 2001년 '국내에 카이로프랙틱에 관한 면허시험제도 등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이유로 기존의 국가시험을 거친 의료인과 차별하여 의료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청구인의 행복추구권, 평등권,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하였다'는 이유로 헌법소원을 냈다. 서울 영등포구에서 미용문신시술을 하는 김모씨는 2003년 사회통념상 의료행위로 인식되지 않는 문신시술행위까지 의료행위로 보게 만드는 이 조항이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에 위배될 뿐 아니라 직업선택의 자유를 규정하는 헌법 제 15조 등에 위반된다며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했다. 두 사건은 현재 심리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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