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들어 바꾼 자동차 번호판을 건교부가 12일 만에 다시 바꾸기로 함으로써 돈과 행정력을 낭비하게 됐다. 새 번호판을 도입한 취지는 이사로 인한 교체비용과 수고를 덜고, 지역 편가르기식의 고정된 체계를 탈피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01∼16은 서울, 17∼20이면 부산 등으로 돼 있어 지역표기의 근본적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그런 터에 디자인 문제까지 겹쳤으니 4년 전부터 준비해 온 계획이 우습게 되고 말았다.누가 봐도 새 번호판은 촌스럽고 유치하다. 1950년대의 트럭 번호판 같다고 혹평하는 사람도 있다. 승용차 1,000만대 시대의 다양성과 미적 중요성을 도외시한 편의주의적 행정이라는 지적에 틀림이 없다. 지역표시가 빠져 공간이 늘어났다고 글자만 키워 놓았으니 아이가 컸는데도 책상과 의자는 그대로 둔 채 방만 늘려 준 꼴이다.
자동차 번호판 문제는 국민의 일상과 직결된 업무를 행정당국이 일방적으로 안이하게 결정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다시 알려 주었다. 모든 정책과 기획은 문화적 미감(美感)에 바탕을 두지 않으면 받아들여지기 어렵다는 점도 분명해졌다. 디자인은 곧 경쟁력이며 상품성의 전부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건교부는 30년 전의 틀에 고정된 채 새 번호판에 관한 의견을 미리 듣지 않았고, 이번 비난에 대해서도 뭐가 문제인지 몰라 어리둥절할 정도였다.
표기체계는 그대로 두고 색상과 자체(字體)만을 대상으로 디자인을 공모, 하반기부터 사용토록 하겠다지만, 기왕 논란거리가 됐으니 새로운 감각으로 번호판의 틀 자체를 바꾸는 것도 앞으로 고려해야 할 것이다. 사실 문제가 되는 것은 자동차 번호판만이 아니다. 도로표지판 등 교통안전 시설, 각종 안내물도 두루 살펴봐야 한다. 진정으로 바꿔야 할 것은 자동차 번호판이 아니라 행정적 무신경과 문화적 무감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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