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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다시본다]1부 일본은 죽었는가?-일본의 저력 ① 세계2위 경제대국 유지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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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다시본다]1부 일본은 죽었는가?-일본의 저력 ① 세계2위 경제대국 유지비결

입력
2004.01.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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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부터 일본 정치지도자들이 한국인의 심사를 어지럽히고 있다. 야스쿠니(靖國) 신사참배와 독도발언으로 우리를 자극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는 정치적 신조를 같이하는 여야정치가와 더불어 군대보유 합법화를 위한 헌법개정까지 준비하고 있다.이같은 우경화 현상은 중국부상과 북한변수와도 연관이 있지만 일본경제의 쇠락과도 맥이 통한다. 일본경제가 훨훨 날면서 동북아, 동남아에 진출하던 1980년대엔 일왕과 총리가 번갈아가면서 과거 침략행위를 사죄했다. 그런데 주변국이 부상하고 일본이 침체한 최근엔 아쉬운 소리를 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그렇지만 일본은 여전히 미국 다음가는 경제대국이다. 그간의 저성장으로 미국과의 경제력 차이가 벌어졌지만 지금도 기술강국, 제조업 강국이다. 기술관련 특허출원은 많은 분야에서 미국을 앞서고 있으며, 디지털전자 분야에서는 독보적이다. 일본 경제산업성이 2003년 6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전세계 각 분야 상위 10사중 정보통신기 6사, 승용차 3사, 반도체제조장비 5사, 철강 2사, 종이펄프 2사, 그리고 건설기계 5사중 2사, 유리 7사중 3사, 전선케이블 6사중 2사가 일본기업이다.

지난 13년간의 연평균 1%대 저성장은 주로 내수부진 때문이다. 소비자들은 지갑 열기를 꺼려했고 물건이 안팔리자 기업들은 설비투자를 망설였다. 이 두 현상은 90년대의 지가, 주가 폭락과 연관이 깊다. 게다가 90년대 후반부터 5년째 지속하는 디플레는 금융기관의 부실채권을 늘려 정상적인 금융중개기능을 마비시켰다. 그 결과 일부 대기업을 포함하여 많은 중소기업이 도산했다.

이처럼 장기간 일본기업들의 발목을 잡고 있던 금융기관이 최근 변화하고 있다. 은행, 증권, 보험의 각 분야 대기업이 외국자본에 넘어가면서 외국인 최고경영자(CEO)와 서구형 경영이 도입되고 있다. 1998∼2001년의 4년간 일본기업의 주식취득과 지분취득, 장기대부 형태로 들어온 직접투자자금은 6,182건, 9조427억엔(750억 달러상당)으로 90년대 전반 대비 건수기준 30%, 금액기준 4배 정도의 증가세를 보였다.

디플레가 지속하면서 부실채권 굴레를 아직 벗어나지 못했지만 취약분야인 금융부문에 서구의 경영노하우가 도입되고 금융기관간 서비스 경쟁이 가시화하면서 금융중개기능이 살아나자 2002년 이후 일본경제가 다시 기지개를 켜고 있다.

그 간의 장기불황하에서 일본경제를 떠받쳐온 두 기둥은 제조업 중심의 수출과 증권, 대부금 등 해외투자자산 수익이다. 2002년의 경우 수출통한 무역수지흑자가 11조7,280억엔(GDP의 2.3%)이었고 대외자산수익인 소득수지흑자가 8조2,784억엔(1.7%)나 된다. 여기서 수송, 여행 등의 서비스수지적자 5조1,627억엔을 뺀 경상수지흑자가 14조2,484억엔(2.8%)이나 된다. 대외순자산은 2002년에 약간 감소하였는데 향후에는 늘 것으로 예상된다.

이렇게 보면 장래 일본경제의 키가 제조업동향과 금융기관의 재생여부에 달려 있으므로 이하에선 제조업 동향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상대적 취약산업인 유통, 건설, 부동산 분야의 체질개선도 과제지만 논외로 한다.

첫째, 마쓰시타전기 등 일본을 대표하는 대형 전기, 전자기업들이 최근 인력구조조정에 나섰고 이로 인한 인건비 절감이 수익개선으로 이어지고 있다. 거품붕괴후 일본 제조업체는 과잉설비, 과잉부채, 과잉고용이 문제로 지적돼 왔는데 앞의 두 가지는 지난 십여년간의 노력으로 상당부분 해소했지만 과잉고용은 최근까지 과제였다. '구조조정하면 주가상승'이라는 시장의 상식이 대기업에도 적용되기 시작했다.

둘째, 일본의 유력 전기, 전자업체들이 한국, 대만, 중국 등 경쟁국으로의 기술유출을 막기위해 핵심기술에 대한 특허출원을 미루거나 일본내 생산을 고집하는 등 '기술의 블랙박스화' 작업에 나서고 있는 점이 눈길을 끈다. PDP, 액정TV, DVD레코더, 디지털카메라 등 일본기업이 압도적 우위를 점하고 있는 디지털가전에서 이같은 현상이 두드러진다. 이들 제품에 들어가는 시스템LSI(비메모리반도체) 수요가 늘고있는데 이것이 일본 반도체산업의 재부상으로 이어질지 관심사다.

셋째, CEO 선임과 이사회 운영방식 등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통한 경영혁신의 움직임도 감지된다. 세계최대의 타이어 메이커인 브리지스톤사는 2001년 이후 미국법인(BSAH) 사장을 일본인 아닌 현지인으로 임명하고 있다. 이 회사는 2000년 8월 9일 미국에서 시행한 대규모 타이어 리콜조치로 주가가 한 때 62%나 떨어졌다. 하지만 자회사의 모회사 합병, 현지인 CEO 임명 등 그간의 일본식경영의 틀을 벗어난 경영을 도입, 2002년 이후 매출과 수익이 회복돼 주가가 다시 올라가고 미국내 판매 1위 자리를 탈환했다.

넷째, 많은 CEO들은 구조개혁방향을 '해야 할 것을 제대로 하는'데 두었고, 저가동율 설비의 매각, 폐기와 설비투자 증대로 제조설비평균수명을 미국(9.3년)보다 낮추었다. 또 경쟁력 IQ 테스트를 거쳐 자사제품에 적합한 기술을 개발하여 신서비스를 추가한 고부가가치 상품을 개발하고, 정부가 공사와 공단이 장악해온 독과점시장을 개방하자 시장참여를 적극 시도하고 있다.

이 같은 일본경제의 부활 움직임과 관련해 우리가 시급히 해야 할 일이 있다. 먼저 주요기업의 체질개선 과정과 기술개발, 보호전략을 면밀히 분석하여 일본과의 기술격차가 확산되지 않도록 하자. 돈 된다고 로열티주고 기술사오고, 생산비 싸다고 중국으로 옮기는 장사치 차원의 경영전략은 조기에 수정해야 한다. 아울러 금융중개기능을 정상화하고 저가에 양호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경쟁틀을 만들어주자. 또 경상수지 흑자기조를 정착시켜 대외자산을 늘려가자.

배 준 호 한신대 국제학부 교수

52세 서울대 공대 졸업,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학대학원 경제학 석사, 일본 히도쓰바시대 대학원 경제학 박사 '일본경제의 변화와 한일경제관계 전망'(경제학연구 창립50주년기념호, 공저) 등 논문 및 저서 다수

■ 日 경제인들 전망

일본 경제인들은 2004년을 일본경제 회복의 분수령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오쿠다 히로시(奧田碩) 니혼게이단렌(日本經團連) 회장은 지난 주 일본 경제3단체장 새해 기자회견에서 "(올해) 깜깜했던 한 밤중을 지나 드디어 여명이 보이기 시작했다"며 일본 경제가 최악의 시기를 벗어나고 있음을 시사했다. 기타시로 가쿠타로(北城恪太郞) 일본경제동우회 대표간사는 한 발 더 나아가 "(일본 경제가) 순조롭게 풀린다면 올해가 일본 경제 회복의 원년이 될 것"이라고 기대감을 표시했다. 야마구치 노부오(山口信夫) 일본상공회의소 회장은 "비제조업, 중소기업, 지역산업의 현황은 그리 밝지 않다"고 지적하면서도 "전체적인 일본 경제는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의 주요 기업 경영자들도 대부분 "올해 일본 경제가 본격적으로 회복될 것"이라고 전망하는데 인색하지 않았다.

물론 변수는 많다.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는 달러에 대한 엔고(円高) 현상과 미국의 경기 후퇴, 이라크 사태와 북한 핵 문제 등 국제정세의 변화, 자국 내 개혁작업의 진전 여부 등이 중요한 변수로 꼽히고 있다.

특히 엔고 현상은 심각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엔고가 한계에 다다랐다. 이대로라면 회복기조의 일본 경제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는 위기 의식이 팽배해 있다. 전문가들도 "일본 주식시장에 대한 외국인의 선호와 경제회복때문에 엔화 강세 추세를 되돌리기는 힘들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많은 기업들이 "엔고에 적응만 하면 오히려 많은 수익을 낼 수 있다"며 자신감을 표시하는 등 일본 경제 전체를 놓고 볼 때 엔고의 영향은 제한적이라는 견해도 나오고 있다.

/김철훈기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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