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친일 반민족행위 진상규명법(특별법) 등 4개의 과거사 청산 관련 법안을 심의한 국회 법사위소위원회는 잘못된 기억을 바로잡고, 비극의 역사가 빚어낸 상처를 치유하려는 노력들에 또 한번 못질을 가했다. 민간인학살 진상규명 통합법이나 강제동원 진상규명법은 칼질에 칼질을 당해 진상을 규명할 최소한의 기구조차 만들 수 없도록 해서 간신히 소위원회를 통과했다. 누더기가 돼 버린 특별법은 그마저도 통과하지 못했다.심사가 있었던 소위원회실에서는 먼저 두 가지 차원에서 월권이 벌어졌다. 먼저 제안된 법안이 상위법과 충돌여부 등 법적 안정성만을 다루도록 되어 있는 소위원회는 진상규명의 방법과 기구, 규정까지 심의하여 삭제하는 등 월권을 했다. 또 하나는 행자부 차관이 정부의 견해라 하며 법안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밝힌 것이다. 그러나 그 형식이 비정상적이다. 과거사 문제를 다루는 관련부처 실무회의가 외교·국방·행자부·보훈처로 구성되었다는 것 자체가 상식에 어긋난다. 최소한 교육부나 문화부 관계자가 참가해야 정상이 아닌가. 또 정부의 견해라면 총리나 대통령에게 보고되어야 했는데 그런 이야기도 없다. 만일 차관이 정부의 이름을 빌려 몇몇 실무자의 견해를 밝혔다면 이는 월권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특별법을 반대하는 국회의원이나 관료의 인식에 있다. 친일파 규정이 추상적이어서 후손들의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사회적 갈등을 야기할 것이며, 조사도 어려워 법 집행상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요컨대 하지 말자는 것이다.
그러나 반대 주장에 대해선 이미 십 수년간의 연구와 고민을 통해 충분히 논의되고 극복되었다. 친일파 문제가 역사적이자 현실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관련 연구자들이 신중하고 엄격하게 객관적인 자료와 기준을 근거로 조사해왔음은 굳이 강조할 필요도 없다.
친일인명사전 편찬은 곧 상식의 부활을 말한다. 우리는 자신의 발언과 행동에 책임을 진다. 더구나 공동체에 해를 끼치거나 죄를 졌을 경우 그것에 대해 책임을 지거나 묻는 것은 당연한 상식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에겐 이 당연한 상식이 너무나 쉽게 무시되고 폐기되어 왔다. 죄를 졌어도 아무도 그 죄에 책임지지 않았다. 오랫동안 책임지지 않음으로써 이제 그 죄가 죄로 인식되지 못하는 사회가 되었다.
특별법 제정이나 친일인명사전 편찬은 역사의 진실을 밝히는 과정이자 책임을 묻고 답하는 작업이다. 그런데 이걸 국회가 막고 나섰다. 친일반민족행위를 조사하던 예산 자체를 없애고 특별법마저 폐기시키려는 폭거(?)를 저질렀다. 하기야 불법자금을 받고도 책임지지 않으려는 의원이나, 그 책임을 묻지 않는 의원에게서 이런 상식을 요구하는 게 잘못인지도 모르겠다. 분노한 시민들이 편찬사업의 중단을 막기 위해 한 인터넷언론사를 통해 자발적인 모금운동에 들어갔다. 예상을 뛰어넘는 지지와 성원은 우리들에게 아직 희망이 남아있음을 말해준다.
김 민 철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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