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고 다니는 시대에서 입는 시대로.'휴대폰, 노트북PC, 개인휴대단말기(PDA)로 대표되는 모바일 정보통신(IT) 기기들. 놀라운 속도로 발전을 거듭하더니 탄생 10여년 만에 생활 속의 필수품으로 자리잡았다. 어느새 주머니 속을 점령한 이들의 다음 목적지는 우리의 '몸'. 들고 다니는 휴대용 모바일 기기들이 입고 다니는 '웨어러블'(Wearable) 장치로 진화하고 있다.
웨어러블 기기의 미래
미국 MIT공과대학의 미디어 랩(Media Laboratory)이 제시하는 '미래형 PC'는 가까운 미래에 우리 생활을 지배할 웨어러블 기기의 전형을 보여준다. 안경과 옷, 헤드셋이 PC 구성의 전부. 안경의 안쪽에는 손톱 크기의 투시형 스크린이 달려 있어 PC의 모니터 역할을 한다. 안경 너머의 광경과 함께 인터넷 검색 내용과 각종 정보 처리 결과가 눈앞에 펼쳐지는 것. 영화 '터미네이터'에서 기계 눈에 보이는 영상·데이터 복합 화면과 비슷하다.
헤드셋을 통해서는 소리 정보가 출력되며, 동시에 음성 명령도 입력한다. 예컨대 '친구 홍길동의 전화번호와 사는 곳을 알려줘'라고 명령을 내리면 '홍길동씨의 주소는 서울 종로구 중학동 14번지고, 전화번호는 010-XXXX-YYYY입니다'라는 정보가 들리면서 눈앞에는 지도와 안내 방향이 보인다. 한편 옷 속에 장치된 휴대전화가 홍길동씨에게 전화를 걸어 헤드셋으로 연결해준다. 만약 홍길동씨가 화상전화를 사용한다면 그의 모습이 안경에 비칠 것이다.
이처럼 다양한 기능을 갖춘 PC는 종이처럼 얇게 펴진 채로 만들어져 옷 속 전체에 들어가 있다. 옷 전체가 커다란 '모바일 전자회로'인 셈이다.
응용의 폭 넓혀가는 웨어러블 기술
MIT 미디어랩의 웨어러블 PC에 사용된 첨단 기술은 이미 상당부분 실현되고 있다. 눈앞의 렌즈에 화면을 투시하는 '헤드업 디스플레이'(HUD)는 비행기와 고급 승용차에 응용됐다. 전방 물체와의 거리와 속도, 현재 위치와 고도 등을 표시하며 목적지로 가는 항로나 길을 안내해 준다.
음성 명령기술은 최근 많은 발전을 이뤄, 윈도XP(영문판)에도 채택됐다. 윈도XP에 '플러스!'(Plus!) 확장팩을 설치하면 이 기능이 나타나는데, '실행' '닫기' '재생' '다음 곡' 등의 말소리로 프로그램을 실행시키고 음악을 들을 수 있다.
여전히 많은 발전이 요구되는 부분은 PC 본체다. 아직은 소형 노트북 수준의 '얇은 상자'를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입는다' 보다 '맨다'는 편에 가깝다. 아직 가볍고 얇으면서도 하루종일 쓸 수 있는 용량의 배터리가 없는 것도 문제다.
음성 입력장치의 경우 말귀를 잘 못 알아들어 보조 입력장치가 필요하다. 지난달 삼성전기에서 개발한 웨어러블 입력장치는 마치 장갑처럼 끼고 움직이면 PC가 사람의 동작을 해석해 명령을 인식한다.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허공에 비치는 '버추얼 키보드'를 조작해 명령을 내리는 것과 유사하다.
이미 실용화된 제품도 나와
웨어러블 PC로 가는 진화과정에서는 초소형 멀티미디어 제품 같은 다양한 부산물이 등장하고 있다. HP가 영국의 디지털미디어 연구소에서 발명한 '웨어러블 카메라'는 선글라스에 초소형 디지털 카메라가 내장된 제품으로 걸어다니면서 주변 모습을 손쉽게 찍을 수 있다.
미국 버톤 스노보드사(社)의 스노보드용 전자 재킷은 MP3 플레이어와 리모콘이 소매에 부착돼 있으며, 역시 MP3 플레이어가 내장된 영국 인피니온의 '스마트웨어'는 물 세탁도 할 수 있다. 의류회사 리바이스와 전자회사 필립스는 개인 인터넷(PAN·Personal Area Network)과 음성인식 이동전화, MP3플레이어가 내장된 의류를 공동 개발, 출시했다. 소매 단추에 숨겨진 리모콘을 이용해 음악을 듣거나 전화를 걸고, 무선 인터넷으로 이메일을 송수신 할 수 있다.
/정철환기자 ploma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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