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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우/"山처럼… 흔들림없이 사랑하고 싶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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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우/"山처럼… 흔들림없이 사랑하고 싶었어"

입력
2004.01.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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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통 눈으로 뒤덮인 설산을 걸어가는 붉은 점 하나. '빙우(氷雨)'(감독 김은숙)는 산악인의 사랑을 그린 영화다. 첫 장면에서 홀로 걸어가는 외로운 등반객의 이미지는 '빙우'가 추구하는 고급 멜로의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산을 다룬 영화로서도 희귀하지만 오랜만에 보는 본격 멜로영화이기도 하다.알래스카 아시아크 산에 동계 원정을 온 등반대장 중현(이성재)은 정상부 빙벽을 오르다가 강한 눈보라와 낙뢰를 만나 추락한다. 다리를 다친 그는 함께 추락한 우성(송승헌)과 밤을 새워 이야기를 나누기로 한다. 깜빡 잠들었다가는 죽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아시아크를 찾은 이유는 한 가지였다. 한 남자는 잃어버린 사랑을 만나기 위해서, 또 한 남자는 이루고 싶었던 사랑을 만나기 위해서.

영화는 조난을 당한 두 남자와 그들의 과거를 번갈아 보여준다. 중현은 교내 산악부 모임에서 경민(김하늘)을 만난다. 지리산 등반에 함께 나섰다가 경민이 등산화 한 짝을 잃어버리자 중현은 고무신을 훔쳐 갖다주고, 두 사람은 가까워진다. 경민의 단짝이었던 우성은 경민이 언제부터인가 자신과 거리가 멀어진다는 것을 느끼고 괴로워한다.

현기증 나는 캐나다 빙벽 등반

'빙우'는 산에 관한 한 사실성에 도달하려는 노력을 아낌없이 보여준다. 캐나다 유콘 주의 르웰린 빙하지대 등에서 현지 촬영했고 배우들은 전문 산악인에게서 5개월 간 등반 훈련을 받았다.

험준한 지형에서 잡은 카메라 앵글, 발을 헛디뎌 빙벽에서 미끄러지는 배우, 얼굴에 달라붙어 녹지 않는 고드름 등은 영화 찍기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상상하게 만든다.

신인 감독 김은숙이 그린 산의 이미지는 늘 한결 같음과 푸근함이다. "흔들림 없는 산의 모습이 멋있다. 산을 닮은 사람을 만났다"라는 경민의 고백이나 경민이 중현에게 던지는 "나보다 산이 더 좋아?" 같은 대사는 산에 대한 영화의 태도를 잘 드러낸다. 산은 이 영화에서 가치의 기준이고 연애의 척도이며 연인보다 더 위대한 무엇이다.

순발력 있는 김하늘의 캐릭터

산이 웅장하고 위엄이 넘칠수록 도시의 일상은 답답하고 비루하게 느껴진다. 두 사람을 엮는 경민의 에피소드는 풍부하게 살아있다. 철로며 차도를 무단횡단하고, 도서관 책에서 마음에 드는 산 사진을 찢어내고, 통금 시간이 넘자 담을 타서 기숙사에 들어가지만 결코 밉지 않다. 순발력 있는 김하늘의 캐릭터에 비해 두 남자의 내면은 성에 낀 유리처럼 잘 보이지 않는다.

'공공의 적'에서 냉혈의 패륜아로 나왔던 이성재는 드라마 '거짓말' 못지않은 섬세하고 예민한 감수성과 깊은 눈매를 보여주지만 이것이 그의 최고의 연기는 아니다. 그의 캐릭터를 보다 또렷하게 해줄 에피소드가 부족한 탓이다. 덕분에 "지겨워. 그만 두자" "좋은 건 아끼는 거야" 같은 최루성 멜로 대사와 귓전을 간지럽히는 감상적인 음악까지 힘에 부친다. 16일 개봉.

/이종도기자 ecr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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