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상파울루 곳곳에는 '슈라스카리아'라는 식당이 있다. 이 곳의 음식값은 보통 20헤알(약 8,000원)로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등 모든 육류를 자신이 원하는 만큼 먹을 수 있다.우리식으로 따지면 일종의 '고기 뷔페'라고 할 수 있는 '슈라스카리아'는 브라질 사람들이 가장 즐겨 찾는 외식 장소. 소 한 마리가 미화 300 헤알(약 12만원)에 불과한 브라질에는 이처럼 먹거리가 풍요롭다.
LG전자 브라질법인의 이장화 부장은 "'신은 브라질인'이라는 말이 있을 만큼 브라질은 축복 받은 땅"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브라질의 서북부에는 세계 열대 우림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아마존이 있고, 동북부에는 철광석, 석유, 천연가스 등 풍부한 광물자원이 매장돼있다. 또 남부에는 설탕, 콩, 커피 농장 등 천혜의 곡창이 펼쳐져 있다. 이쯤 되면 '신이 내린 땅'이라는 자부심에 수긍이 간다.
한반도의 약 40배에 이르는 광활한 국토에 매장된 풍부한 천연자원과 1억7,000만 명의 인구를 바탕으로 하는 엄청난 노동력과 내수 시장.
이 부장은 "빈약한 자원에 시달려온 우리 입장에서는 브라질은 어쩌면 가난한 것이 이상한 나라"라고 말했다. 하지만 브라질이 브릭스로 부상할 것이라는 전망에 대해 현지의 반응은 예상외로 냉담했다. 상파울루공업연맹 마우리스 코스턴 대외담당이사는 "브라질이 잠재력을 갖고 있다는 이야기는 어린 시절부터 들어왔다"고 했고, 전자회사인 이투아텍의 네베스 페르난도 부장도 "너무나 많은 변수들이 있기 때문에 전망을 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도대체 무엇이 신의 축복을 받은 이 나라가 브릭스로 비상을 꿈꾸는 것조차 어렵게 하고 있는 것일까. 브라질에서 가장 풍요로운 도시 상파울루 시내 곳곳에는 '파벨라'라는 빈민촌이 있다. 거대한 군락을 이루고 있는 파벨라에는 경찰도 얼씬거리지 못하고 오로지 마피아 두목의 말이 곧 법이다. 파벨라에서 살고 있는 에두아르드 실바 (32)씨는 "총격전이 벌어져도 경찰이 오지 않는다"고 했다.
반면 상파울루 최고급 주택가 '모룸비'는 완전히 딴 세상이나 다름없다. 맥도널드 등 미국식 패스트푸트점이 즐비하고 돌아다니는 차도 모두 벤츠, BMW 등 고급차 일색이다. 입구에는 초소가 있어 주민의 초청이 없는 사람은 접근조차 못해 마치 파벨라 사이에 세워진 '거대한 성'처럼 군림하고 있다. 자가용 헬기를 이용하는 부유층 주민의 모습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교육여건도 변변치 않은데다 국민들의 교육열도 높지 않아 빈부격차가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는 점. 그래서 브라질은 흔히 '벨인디아(경제규모는 벨기에 수준이지만, 사회발전은 인도 수준이라는 의미)'로 불린다.
카르도수 정권시절 상공부 차관을 지냈던 삼성전자 브라질법인의 자문역 벤자민 식수씨는 "불균형 발전이 구조적으로 굳어지면 지속적 성장은 어려울 수 밖에 없다"고 한숨을 쉬었다.
낮은 저축률도 경제 성장을 가로막는 구조적 장애로 꼽힌다. 1980∼90년대 극심한 인플레이션을 겪으며 '은행에 돈을 맡기면 손해'라는 인식이 뿌리깊게 박히는 바람에 금리가 20%에 육박해도 도무지 저축을 하는 사람이 없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권기수 연구원은 "돈이 생기면 무조건 쓰고 보자는 풍조 때문에 자본의 선(善)순환 구조가 만들어지지 못했다"면서 "결국 엄청난 대외채무를 지게 됐고, 이 때문에 외부의 작은 충격에도 금융시장이 흔들리고 외환위기가 반복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기업 활동의 발목을 잡는 이른바 '브라질 코스트(복잡한 법체계, 고율의 세금, 높은 금융비용, 관료주의, 인프라 부족 등)'의 해결도 브라질 경제가 성장을 위해서는 반드시 넘어야 할 산.
무엇보다 아직도 전력의 70%를 수력발전에 의존하고 있어 비가 내리지 않으면 공장 가동이 중단되는 사태가 반복되고 있을 만큼 경제 인프라가 부족한 상황이다. 물류가 원활하지 못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뿌리깊게 박혀있는 자국산업 보호정책과 복잡한 세금 체계도 외국인 투자를 망설이게 하는 요인으로 지적된다. LG전자 브라질법인 박영복 부장은 "물건을 팔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국 내에 생산시설을 갖춰야 하는데다 관세, 공업세, 사회보장세, 부가가치세, 법인세 등으로 이뤄진 복잡한 세금 체계를 숙지해야 하기 때문에 진출 자체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브라질이 '영원한 미래의 나라'라는 오명을 깨고 브릭스로의 비상을 꿈꾸는 것은 과연 불가능한 일인가. 대외무역정보청 사미르 키디 고문의 말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그 동안 브라질의 잠재력은 어디까지나 개발되지 않은 잠재력이었다. 중요한 것은 '잠자던 거인' 브라질이 이제야 비로소 오랜 잠에서 깨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상파울루=박천호기자 toto@hk.co.kr
■ 빈부차 실태
브라질은 소수의 부유층과 다수의 빈곤층으로 이뤄진 극단적인 계층의 양극화 구조를 갖고 있다. 여기에는 나름대로의 역사적 연원이 있다. 포르투갈에 의해 1500년 발견된 뒤 유럽의 식량기지로 건설된 브라질은 19세기까지 농장주와 농장노동자, 양대 계급으로 이뤄진 사회였다. 이것이 20세기 들어 급격한 산업화 과정을 거치며 그대로 굳어져 계층의 양극화 구조를 갖게 된 것이다.
유엔 자료에 따르면 브라질은 소득의 상위 10%가 국부의 절반 이상을 소유하고 있으며, 특히 소득의 상위 3%는 전체 농경지의 60% 이상을 소유하고 있을 만큼 엄청난 부자들이다.
반면 브라질 국민 43.5%는 하루 소득이 2달러 이하로 국제 기준상 빈곤층에 속하며, 특히 5,000만명은 하루 끼니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다. 오죽했으면 룰라 대통령이 대선공약으로 '포미 제로'(기아와의 전쟁) 캠페인을 내걸었을까.
브라질의 극단적인 부의 편재는 소득불균형을 나타내는 지니계수를 살펴보면 확연히 드러난다. 세계은행이 1992년부터 2000년까지 세계 각국의 지니계수(높을수록 불균형 심화)를 조사한 결과 브라질은 0.61로 중앙아프리카공화국(0.60), 시에라리온(0.63) 등 일부 아프리카 국가들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미국(0.41), 일본(0.25), 중국(0.40) 등과는 너무 차이가 난다.
문제는 이 같은 빈부격차가 낮은 교육열로 인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는 점. 실제로 지니계수는 1970년에 0.56에서 80년, 0.59, 90년 0.63 등으로 계속 악화됐고 최근에는 실업률도 10%대를 웃돌고 있다.
하지만 교육여건도 좋지 못하고 교육을 받고자 하는 열기도 뜨겁지 않다. 한 브라질 교포(29)는 "파벨라에서 태어난 것을 운명으로 여기기 때문에 가난이 대물림 되고 있다"고 말했다.
슈라스카리아에서는 먹다 남은 고기가 쓰레기로 버려지고, 파벨라에서는 일하고 싶어도 일자리가 없어 물로 배를 채우는 상황에서 가난한 자의 분노 표출이 없을 리 없다. 외국인은 물론이고 내국인조차 어둠이 깔린 상파울루 거리 곳곳을 마음껏 돌아다니지 못하고 심지어 신호대기를 위해 정지해있는 차량에까지 총구가 겨눠지는 극도로 불안한 치안 상황이 바로 그 증거다.
/박천호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