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P증후군을 실제로 경험했다는 의사들은 많다. VIP증후군이란 병원이나 의사 입장에서 특별히 잘 챙겨야 할 VIP 환자일수록 오히려 수술이나 치료 결과가 잘못되는 징크스 같은 것이다.국빈이나 고위 정·관계 인물, 이름난 재계 인사가 병원을 찾았을 때, 혹은 잘 아는 사람이 자기 가족이라며 "잘 해달라"고 부탁을 해왔을 때, 그동안 멀쩡히 잘만 하던 수술인데도 뭔가 잘못해 후유증을 남기거나 평소보다 오히려 결과가 나쁘다. 그렇다고 여기에 이해하기 어려운 어떤 신비한 현상이 개입된 것도 아니다. 결국 의사도 사람인 이상 심리적인 압박감에 영향을 받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예컨대 '높은 분'에 대한 수술은 그 직위에 합당한 '예우'를 차리다가 오히려 잘못 되는 수가 있다. 손에 물이 오른 젊은 교수를 젖히고 이름난 중진교수가 나서지만 수술감각이나 판단은 한창 환자를 많이 보는 젊은 교수보다 못할 수 있다.
또는 "잘 해 줘야 한다"는 감정이 일을 그르친다. "조금이라도 적게 절개하는 게 낫겠지" "수술에서 깨어난 뒤 조금이라도 편하게 해 주는 게 좋겠지" 하다가 확실히 절제해야 할 것을 남겨두는 것이다.
한 의사는 자기 아버지의 백내장 수술을 앞두고 집도할 의사의 수술실을 맴돌았다. 앞서 다른 환자들을 수술할 때 제대로 하는지 계속 지켜보다가 정작 자기 아버지의 차례에선 수술실 밖으로 나와버렸다. "괜히 집도의가 나에게 신경 쓰다가 수술이 잘못 될까봐서"였다.
다른 의사는 한 환자의 자기공명영상(MRI) 사진을 놓고 "암인지 외상에 의한 것인지 확실치가 않은데 뻔히 아는 처지에 값비싼 검사를 다시 하자고 할 수도 없고…"라며 또 다른 형태의 VIP증후군을 토로했다.
의사와 특별한 관계라도 있으면 좀더 신경을 써주지 않을까 싶어 어떻게든 아는 사람을 찾아 부탁을 하는 이들이 있다. 물론 '3분 진료'라는 우리나라 상황에서 환자의 입장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다른 환자와 다른 특별 대우가 꼭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만은 아닌 것이다. 과도한 청탁은 오히려 VIP증후군을 낳을 수 있음을 기억하자.
김희원기자 h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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