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 페르고 글·클로드 라푸엥트 그림 정혜용 옮김 낮은산 발행·1만원
이렇게 점잖치 못하고 불온하기 짝이 없는 책이 청소년 필독서라니, 초등학생부터 노인까지 두루 읽는 고전이라니, 프랑스는 정말 이상한 나라군.
교사나 학부모라면 '단추전쟁'을 읽고 그렇게 중얼거릴지도 모르겠다. 프랑스 최고의 문학상인 공쿠르상 수상 작가 루이 페르고(1882∼1915)가 1912년 발표한 이 소설은 출간 당시부터 시비를 불렀다. 온갖 기발한 욕설과 질펀하고 노골적인 대사가 난무하는 가운데 칼날처럼 번득이는 조롱 섞인 시선에 평론가들이 발끈했기 때문이다.
이 발칙하고 유쾌한 소설은 프랑스 풍자문학의 대가 라블레가 남긴 선전포고성 발언으로 시작한다. "이 곳에 들어오지 말지어다. 선한 척 하는 인간들, 원숭이처럼 교활한 놈들, 부픗한 위선덩어리들…. "
방문객을 긴장하게 만드는 이 문패를 염두에 두고 이제 책 속으로 들어가자. 1900년대 프랑스의 시골에서 숲을 가운데 두고 대대로 원수지간인 두 마을 아이들이 벌이는 전쟁 이야기다. 벨랑 마을 아이들이 론쥬베른느 아이들에게 '물렁좆'이라고 고약한 욕을 한다. 격분한 론쥬베른느 아이들은 벨랑 마을의 성당 문짝에다 밤에 몰래 욕을 써갈긴다. '벨랑 놈드른 모두 거시기 터리나 글쩌기고 인는 놈드리다.'
그리하여 두 마을 사이 숲에서 아이들의 전쟁이 터진다. 포로를 잡으면 옷에 붙어있는 단추와 멜빵, 구두끈을 몽땅 잘라내 돌려보낸다. 그러면 그 아이는 집에 가서 곤죽이 되도록 매타작을 당한다. 자랑스런 승리와 치욕스런 패배를 몇 차례 겪으면서 전우애를 다져가던 아이들의 은밀한 무용담은 어른들에게 발각돼 모두 흠씬 두들겨 맞는 것으로 끝난다.
어른들의 '전투 금지' 명령에 아이들은 비감어린 기분에 휩싸인다. 단추전쟁을 끝내는 것은 모든 환상이 사라지는 것과 마찬가지이므로. 라블레의 경고성 문패를 내건 이 책은 한 아이의 항의성 질문으로 끝난다. "우리도 어른이 되면, 부모들처럼 그렇게 멍청해질까?" 자신들의 어린시절은 까맣게 잊어버린 채 말썽 피운다고 아이들을 두들겨 패고, 설교나 일삼는 어른들에게 한 방 날린 것이다.
'단추전쟁'의 아이들은 맹랑하다. 부모들이 밤에 침대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알면서 모른 척 시치미를 떼고 거룩한 말씀만 늘어놓는 선생님을 우습게 알고 자신들만의 비밀요새에서 어른들의 위선을 실컷 조롱하는 '어린 야만인' 들이다. 작가는 말한다. "나의 어린 시절의 한 순간을, 활기찬 어린 야만인들이 엮어가는 열광적이고 거친 삶을, 그 꾸밈없고 영웅적인 모습 그대로, 다시 말해 가족과 학교의 위선에서 해방된 모습 그대로 살리고자 했다."
풍자와 익살로 뒤범벅된 이 소설은 거칠고 생생하다. 배꼽잡게 우습고 통쾌하다. '수액이, 생명이, 열광이, 호쾌한 웃음이 넘치는 책을 쓰고 싶다'고 했던 작가의 생각 그대로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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