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들과 함께 걷는 길 / 이순원 글. 해냄어린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아쉬운 것은 아무리 노력해도 내가 아이들 마음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읽으면 읽을수록 더 재미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계속 읽노라면 애들 마음에도 조금씩이나마 다가갈 수 있겠지 하는 희망을 가져본다. 그러나 그건 간접경험일 뿐 애들과의 대화만큼 생생하진 않다.
이순원의 '아들과 함께 걷는 길' 은 아버지와 아들이 대관령을 걸어 할아버지 댁까지 가면서 나눈 대화를 쓴 글이다. 한 굽이 한 굽이마다 한 가지 주제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나무나 풀의 이름, 시냇물 같은 자연을 말하기도 하고 아버지, 아버지의 아버지, 또 그 아버지의 아버지로 연결되는 가족의 역사를 들려주기도 한다. 또 아들이 대관령이 몇 굽이인지 묻자 미리 알면 걷기가 더 힘들어진다거나 뛰어 내려가다 미끄러져 다치자 한 때의 조급함은 그 이후 생활을 두 배 힘들게 한다며 고갯길 걷는 것에 비유하여 인생살이에 대한 은근한 가르침도 준다 .
그러나 고등학교 때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대관령 꼭대기 밭에 농사지으러 간다고 고집부릴 때 단념시키지 않고 뒤를 봐 준 할아버지와는 달리 아들에게는 끝까지 말리겠다는 말에는 작가도 평범한 아버지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읽는 내내 엄마 노릇을 끊임없이 애들 채근하는 것으로 착각했다는 자각 때문에 움츠러들었던 어깨를 다시 펼 수 있었다.
때로는 아들이 저희들을 키우면서 가장 안타까웠던 순간이나 처음으로 믿었던 건 언제인지 먼저 묻는다. 그러면서 아버지도 할아버지의 아들이니 할아버지가 먼저 아버지의 불편한 마음을 풀어주실 거라고 아들은 위로한다.
삶의 고비마다 기다림으로 길을 열어주었던 할아버지는 그 날도 어두운 산길을 걸어 아들과 손자를 기다리는 등불이 되어주었다. 별로 길지 않건만 각 굽이마다 이야기가 바닥이 안 보이는 우물처럼 어찌나 깊은지 단숨에 읽고 난 후에도 다시 한 굽이씩 골라 꼼꼼하게 읽고 싶어 책장에 꽂지 않고 책상 위에 두었다.
자식의 생각을 몰라 애달픈 부모들이여, 새해를 맞아 아이와 단 둘이 길을 떠나보자. 그리하여 애들의 이야기를 귀가 아니라 마음으로 들어 아이들이 스스로 가려서 하는, 부모에게 해도 될 말과 안 해야 할 말을 모두 들을 수 있는 행운을 누려 보자.
같이 길을 떠나는 부자의 듬직한 뒷모습을 보는 엄마의 감격은 또 얼마나 클까. 아들은 부정을 느끼고, 아버지는 모르는 새 커버린 아들의 성숙함에 믿음을 얻어 돌아오겠지.
/대구 가톨릭대 도서관학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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