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요즈음 제이미 올리버라는 한 영국 청년이 진행하는 요리 프로그램에 푹 빠져 있다. 어지러울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는 카메라 앞에서 이 금발의 미남 청년은 그 카메라보다 더 빠르게 움직이면서, 끊임없이 되지도 않는 말을 늘어놓고, 끊임없이 칼질을 하고, 끊임없이 재료를 갈아대고, 또 좁은 부엌에서 음식 재료를 찾아 끊임없이 움직인다. 냉장고를 열어 양파를 꺼내고, 창문을 열어 창 밑 조그마한 화분에서 자라는 허브를 꺾어오며, 서랍을 부지런히 여닫으며 밀가루를 찾아낸다. 흔한 요리 프로그램에서처럼 온갖 양념이 도마 옆에 가지런히 준비돼있는 일은 절대로 없다. 그는 늘 경쾌한 색상의 셔츠에 낡은 청바지만을 입은 채, 흔한 꽃무늬 앞치마 하나 두르지 않는다. "이건 아주 간단하죠" "진짜 환상적이죠" "이걸 넣으면 맛이 확 달라지죠" "정말 먹음직스럽죠" "정말 끝내주죠"를 반복하면서, 그의 성실한 동작은 빠르게 질주한다. 잘 편집된 화면은 한편의 재치 있는 드라마, 혹은 유쾌한 쇼 프로그램을 연출한다.그러나 그의 둔탁한 칼질을 아직 보지 못한 당신이, 지금 단순한 하나의 엔터테인먼트만을 상상해서는 곤란하다. 한 밴드에서 활약하고 있다는 이 20대의 열혈 청년은 자신의 요리에 들어가는 양념 하나하나를 구체적으로 언급하면서, 왜 이것이 들어가야 하는지, 왜 여기에는 다른 것이 들어가면 안되는지, 그리고 왜 하필이면 지금 들어가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설명한다. 그의 분석적 논구에 몰입하다 보면, 하나의 요리에 들어가는 모든 재료와 조리방법이 선험적 예정 조화의 필연적 체계에 따른다는 엉뚱한 생각에까지 이르게 되고, 이윽고 하나가 여럿이 되고 여럿이 하나가 되는 감동적 변증법을 보여주는 이 프로그램에 울컥 고마운 마음이 들곤 한다. 물론 나도 저 필연성의 놀라운 연쇄 과정을 스스로 한번 밟아보고 싶다는 욕구가 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나의 요리 프로그램이 성취할 수 있는 최상의 결과인 셈이다.
드물기는 하지만, 세상에는 이와 유사한 책들이 존재한다. 끊임없이 많은 말들을 늘어놓으면서도 설교하지 않고,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설명하면서도 권태롭지 않은 책들. 그래서 그 자체로 하나의 훌륭한 쇼이지만, 동시에 훌륭한 수업이기도 한 책들. 지난해 4월에 출간된 '바이블 사이언스'가 이런 종류의 책에 속한다. 과학을 쉽게 설명하는, 혹은 설명하려고 시도하는 책들은 많이 나와 있다. 그러나 많은 경우, 그런 책들은 과학도 아니고, 엔터테인먼트도 아닌 채, 엉거주춤한 유혹의 포즈만을 연출하고 있다.
물론 하나의 책이 모든 것을 겨냥할 수는 없다. 모든 것을 겨냥하는 것은, 그 말 그대로 아무런 겨냥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배움이 오락이 되고, 오락이 배움이 되는 이런 축복된 만남을 더욱 질투한다. 어려운 일은 드물고, 아름다운 일도 드물고, 훌륭한 일은 더더욱 드물다. 그래서 나의 질투도 늘어간다.
/김수영·문학과지성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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