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애, 이광수 등 지음·방민호 엮음 북폴리오 발행·각 9,000원
일제시대 작가들의 자전적 소설을 모은 '꽃을 잃고 나는 쓴다'와 '구보씨의 얼굴'이 출간됐다. 강경애 염상섭 이광수 채만식 등 11명의 작품이 '꽃을 잃고…'에, 박태원 김유정 이상 한설야 등 12명의 작품이 '구보씨의 얼굴'에 수록됐다.
일제시대 작가들에게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주관적인 것이 아니었다. '나'는 식민지를 살아가는 지식인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이태준의 소설 '패강랭'이 한 사례다. 주인공 현(玄)의 직업은 작가다. 10여년 만에 평양에 온 현은 여자들이 더 이상 머릿수건을 쓰지 않고 기생들이 서양댄스를 추는 데 분개하고 혐오한다. 그것은 조선의 아름다움이 사그라지는 현실에 대한 작가 자신의 분노이기도 하다. 그런 현을 친구들은 비웃고, 현은 차가운 대동강물 앞에서 '이상견빙지(履霜堅氷至)'라는 말을 떠올린다. '서리가 오거든 그 뒤에 얼음이 올 것을 각오하라'는 이 말은, 이 작품이 발표된 1938년 이후 닥치는 암흑기에 대한 예언으로도 들린다.
강경애의 '원고료 이백원'에서 소설가는 금반지와 금시계에 대한 욕망을 털어버리려 애쓰고, 염상섭의 '표본실의 청개구리'에서 화자는 삶의 권태와 허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방황한다.
김남천의 '등불'에서 사상범이었다 전향한 주인공은 회사의 구매계에 취직해 굴욕감을 받아들이면서 일해야 한다.
채만식의 '민족의 죄인'에서 친일을 했던 화자는 자신의 행적을 고백하고 자아 비판한다. 이들 작가들이 자전적 소설을 쓴 것은 개인의 삶의 기록과 내면 드러내기에 그치지 않는다. 이들에게 자기 이야기란 식민지 현실 앞에서 고뇌하고 절망하는 사람 공통의 이야기였다.
/김지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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